농협 회의록 달라니까 복사비를 내라고?

  • 입력 2018.03.23 14:24
  • 수정 2018.03.25 12:28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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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얼마 전 한 지역농협 조합원으로부터 농협이 너무도 비상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게 됐다. 지난해 대의원총회 자료를 확인하고 싶어 지역농협에 달라고 했더니 대의원이 아니라 줄 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조합원이 “조합원인데 왜 줄 수 없냐”고 따졌더니 농협 직원은 “열람은 가능하다”고 했단다. 농협 직원은 실랑이 끝에 결국 복사를 해주기로 했는데 복사비를 내라고 했다. 농협 직원이 설명한 이유는 농협 정관에 적시되진 않았지만 복사를 해줄 때 비용을 청구토록 하는 게 이사회 의결사항이란 것이다. 조합원은 “농협중앙회에 문의했더니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게 이 직원의 얘기”라고 전했다.

더 가관인 건 조합원이 “그럼 스마트폰으로 찍어 가겠다”고 했더니 “유출될 수 있다”고 저지했다고 한다. 복사하면 유출이 안 되나보다. 이 조합원은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행정을 공개하고 있는데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농협 홈페이지에 간단하게 문서 하나 올리면 될 일”이라고 체념하듯 말했다.

이 사례는 영업비밀 등을 명분삼아 비밀스럽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농협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른 나라 농협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농협에서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언뜻 보면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식적 일들이 모여 지금의 농협중앙회를 지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해 12월 농협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2017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우수(2등급)기관으로 선정됐다며 청렴도 평가 결과가 수직 상승했다고 널리 홍보에 나섰다. 앞서 농협은 지난해 11월 2일을 ‘농협 윤리경영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엔 청렴한 조직문화를 확산하겠다며 신분 확인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익명제보시스템을 농협중앙회, 경제·금융지주 및 전 계열사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인 지난 16일엔 490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2018년 농협 윤리경영 워크숍을 개최했다. 목표는 ‘청렴도 최우수기관 도약’이다.

농협이 적극적으로 청렴 문화를 정착하겠다니 참 다행이다. 하지만 연일 농협과 관련된 비리나 부패 보도가 끊이질 않는 현실과 비교하면 낯설기만 하다.

‘투명성’은 하루 아침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구호만 외친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에 걸맞는 운영에 나선다면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것이다. 단, 기계적 수치 상승에만 매몰된다면 청렴 문화는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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