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46] 농부와 장관

  • 입력 2018.03.23 09:58
  • 수정 2018.03.23 09:5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부들은 근본적인 농업·농촌 문제해결 방안이나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시급한 과제들의 해결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의 한 사례를 보면, 양양에서는 친환경 미니사과 생산을 특화하기 위해 30여 중소농가들과 양양군이 힘을 모으고 있다. 3년 전에 시작한 알프스 오토메 품종에 추가로 지난해 11월부터는 루비에스 품종을 적극 보급하고 있다. 나는 알프스 오토메를 재작년에 이미 식재해 키우고 있기 때문에 루미에스는 10여 그루만 분양받아 가식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겨울을 지나 봄이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 가을에 식재한 어린 루비에스 묘목이 겨울동안 동해 피해를 입은 것이다. 한 농가에서 200~300주씩 식재한 루비에스 중 80~90%가 동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묘목 값만 하더라도 보조금 포함 가구당 200~300만원씩 들어갔고 과수원 조성 등 적잖은 돈이 투입됐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재해보험에 들어놓은 것도 아니어서 더욱 문제다. 예상치 못한 강추위가 겨울 내내 지속됐기 때문인데 이 또한 기후 환경변화의 작은 피해일지도 모르겠다. 농민들과 군에서는 이 문제를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크다.

현장의 다수의 농민들은 현재 우리나라 농업계의 최대 화두인 농민헌법 개정, 직불금 및 보조금 개편, 기본소득, GMO, GAP, 남북농업협력, 농협개혁 등에 대해서는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농업문제들이 급한 과제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문제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화장실이 급한 사람에게는 화장실을 빨리 찾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급한 과제이지 전국적으로 화장실을 어떻게 공급하고 설치해야 할 것인가는 급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면서 이 땅의 농부들이 직면한 이런 저런 시급한 과제들이 한둘이 아닐 터다. 그런데 최근 농정의 최고 사령탑인 농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어업 비서관이 전남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동시에 사직했다. 행정부와 청와대의 수장들이 한꺼번에 농민을 내팽개치고 떠난 것이다. 그들이 평소에 입만 열면 농민과 농업과 농촌을 위해 헌신했으며 헌신하겠다는 말은 모두다 거짓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농업과 농촌과 농민은 그들의 소위 출세에 필요한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교적 국정을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되는 문재인정부가 왜 이런 분들만을 골라 농정의 두 축으로 중용했는지,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보는 시각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이렇게 소홀히 해도 괜찮은 것인지, 답답하고 우울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