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농촌풍경

  • 입력 2008.05.18 16:18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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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경남 진주시
유난히 달력의 빨간 날이 많은 5월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5월은 바쁘다. 누구나 챙겨먹는 달력의 빨간 날짜 외에 농촌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들로 조용할 날이 없다. 면민 체육대회니 경노잔치니 폐교직전의 초등학교 동창회까지 참 많다. 밭에 고추며 콩이며 심어야 하고, 모내기를 위해서 논도 한번 갈아엎어 놓아야하고 모판도 준비해 놓아야 하는 정말 바쁜 5월이다. 그렇게 우리 농민들은 남들 다 하는 꽃구경 한번 못해보고 눈부신 봄을 보낸다.

마을 이런저런 많은 행사들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음식준비를 위해서는 행사전날 동네 부녀회 아지매들은 집안일도 잠시 놓고 바쁜 들일도 잠시 뒤로 하고, 마을 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떤 음식을 할 것인지 몇 인분을 할 것인지 시장은 누가 볼 것인지 논의하고 결정한다.

이제 갓 1년이 넘은 새댁인 나로서는 아무 말 없이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만 있다. 일하다 늦게 참석한 아지매들이 오면 시원한 물이나 커피를 내오는 일은 나의 전담이다. 그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역할을 나누고 일을 시원스레 해 내는 것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 몇몇 남지 않은 농촌, 그런 농촌을 지탱하고,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매김하게 만드는 힘이 그들 농촌여성에게서 나오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해본다.

얼마 전 남편의 동네 친구가 우리 논을 지나면서 보니 호밀이 자라고 있더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있다가 지난 일요일 논에 가보았는데 정말 푸른 호밀이 자라고 있었다. “누가 주인허락도 없이 심었을까?” 조금 마음이 언짢았다. 작년까지는 텅 비어 있었던 이웃 논들도 죄다 호밀이 심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트랙터에 호밀 베는 기계를 단 아저씨가 논에 나타났다. 그래서 여쭤보았더니 이웃 논을 갈다가 잘못하여 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빌리는 값으로 평당 100원을 쳐준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화도 났지만, 오죽하면 약 10km 밖에 사시는 분이 여기까지 호밀을 심었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해해주기로 하였다. 작년에 비해 50%이상 상승한 사료 값으로 인해 지금 우리 면에는 난데없는 호밀농사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웃 동네에 남편의 후배가 늦게 귀농을 해 있다. 하우스에서 나오는 채소들을 곧잘 주곤 하는 절친한 관계이다. 서울에 사는 시누이들이 고향이라고 온다고 해서 음식을 준비하다 호박전이라도 부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배의 하우스에 갔었다.

“가져가고 싶은데로 가져 가이소”

하는 것이다. 이유를 들어 보니 호박 10kg 1박스에 2천원이란다. 상자 값이 1천원, 운송료 6백원, 도매시장 상하차비에 농협 수수료를 더하면 완전히 적자 농사다.

도시에서 변변찮은 직장생활하다 비정규직으로 이리 저리 떠돌다 결국 신용불량자 딱지를 달고 고향이라고 들어온 농촌이다. 착실히 농사짓고, 붙임성도 좋고, 젊은이라곤 유일하다 보니 ‘동네북’처럼 되어 버렸다. 2년전에는 베트남 아내를 맞아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농촌 청년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세상이 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촌에서 희망을 찾기가 낙타가 바늘 통과하기 만큼 힘든 것인가?

그래도 농민들은 농촌을 지킨다. 온갖 농사일에 마을일까지 해내는 아지매들도, 호밀 농사 전쟁을 하는 아저씨도, 똥값 농사 호박을 따내는 청년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아니 이것저것 계산하고 따질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가는 때가 농촌의 5월이다. ‘온 산의 신록이 더욱 짙어지듯이 언젠가는 세상의 희망도 그렇게 짙어지겠지.’ 그런 꿈을 꾸며 5월의 농촌은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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