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나를 잊지 말아요

  • 입력 2018.02.04 11:48
  • 수정 2018.02.06 15:22
  • 기자명 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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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한 명이라도 친하게 지내는 것뿐입니다.”

기후변화와 초고령화 문제가 제일 먼저 들이닥친 곳이 농촌이다. 지금 수준의 생산마저도 어려워지면 도시 소비자들은 지금처럼 국내산 농산물을 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대비를 하자는 주문을 나름 저 말에 녹인다. 생협 운동과 급식 운동의 방향 설정은 결국 농민들의 지속가능한 생존의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는 소견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궁금해 하는 대안에 대한 내 제언은 저 한 마디 뿐.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농민들과 친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농민인 큰아버지, 외삼촌 모두 돌아가시고 ‘과수댁’ 큰어머니, 외숙모께서 고향에 남아 힘겹게 농사를 이어가신다. 하지만 이분들마저 떠나고 나면 이런 알토란들을 받아먹을 수 없을 것이다. 용돈이라도 찔러 드리는 시늉으로 조카딸 노릇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아직 농촌에 삼촌지간이라도 남아 있지만 태생부터 ‘시골 할머니 댁’을 갖지 못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생협에 가입해서 먹고살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실제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얼마 전 생협 생산자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구온난화보다는 고령화 문제가 우리에게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다. 하여 어미로서 나름 짜본 생존 전략이 ‘농민들에게 들이대고 살자’다. 훗날, 공장 말고 생명 있는 먹을거리들을 구할 수 없는 날이 오면 엄마가 친하게 지내던 ‘○○이모’, ‘○○큰아빠’ 찾아가서 음식을 청하라고 말이다.

사는 곳 지근에 4대강 싸움을 했던 양평 두물머리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오며가며 들러 일 돕는단 핑계로 토마토 모종 몇 주 심고 술추렴만 한다. 그런데 이 형님들은 나의 이 사심을 아직 눈치 채진 못 한 것 같다. ‘방울 양파’라는 신품종 개발을 한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파지’ 양파와 일부러 이렇게 키운 것 아니냐며 놀려댄 오그라든 오이와 고추, 이런 못난 유기농 농산물을 얻어오는 길에 나는 울었다. 유기농, 이게 뭐라고. 상품성 없어 파지도 많이 나오는 이 농사를 짓자고 두물머리에서 싸우다 쫓겨났나. 땅심 겨우 올려놓은 유기농 농지는 4대강 사업 강행으로 자전거 길에 내주고 두물머리 농민들은 다른 땅을 찾아 헤맸다. 대체부지로 밀려나 그 농지 임차비 이자 갚기도 묘연한데 이제 원금 상환의 시간이 다가와 농민들은 초조하다. 농지 이자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이웃 농민들 중에선 연락조차 닿지 않는 경우도 있어 속상한 마음을 나누던 술자리가 지난 연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국가는, 적어도 바뀌었다고 생각했던 국가는 두물머리 농민들에게 다시 계고장을 보냈다. 두물머리 싸움은 명목상 6년 전에 끝났고,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4대강 보를 일부 개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악순환의 원인이자 결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이 빤해지는 지금 날아든 빨간 딱지. 수원지법은 생각지도 못했던 두물머리 토지수용에 대한 소송 비용 1,313만2,000원에 대해 청구 확인을 해왔다. 연말이면 이런저런 독촉장에 시달리는 것이 대한민국 농민들의 숙명이지만 이런 계고장까진 해도 너무한다. 4대강은 여전히 두물머리 농민들의 목을 죄고 있다.

이 글은 그 답답한 마음 알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일 뿐이다. 나도 힘없기는 매한가지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저 조만간 막걸리 몇 병 사들고 놀러가겠다는 전보를 두물머리로 쳐본다. 나도 형님들을 잊지 않았으니 훗날 내 아이들도 잊지 말고 ‘방울양파’ 꼭 먹여 주십사 하는 사심을 오늘은 차마 감추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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