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루라도 현장에 와 보세요

  • 입력 2018.01.07 08:16
  • 수정 2018.01.07 08:1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자성어 중 지상담병(紙上談兵), 즉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조괄이란 장수는 자국에서 병법의 엘리트로 통했다. 적국인 진나라가 조나라로 쳐들어올 때, 조나라 사람들은 ‘병법에 통달하고 똑똑한’ 조괄이 침략을 막아내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조괄은 병법이론 글줄만 달달 외웠고 실전경험은 없었다. 조괄은 끝내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해 목숨을 잃었다. 군대는 전멸했고 조나라는 진나라에 흡수됐다.

옛날 조괄이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농정분야 관료들은 종이 위에서 농업을 논한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농업 관련 석·박사 학위를 따고 온 ‘엘리트’들이 한국 농업정책을 논의·결정한다. 이들은 농업 지식에 통달한 똑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똑똑한 사람들의 정책이 농업현장에선 외면당한다. 왜일까. 첫째, 현장 농민들과 현장에서 소통할 기회가 드물다. 때때로 현장 농민들과 간담회나 공청회 등의 행사에서 만나긴 한다. 하지만 그 뿐이다. 행사에서 만나는 건 잠깐이며 제대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적다. 실제 농사 현장에서 그들이 어떻게 농사짓는지, 농사 과정에서 뭐가 고민인지, 농사짓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살필 기회는 사실상 없다.

둘째,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책에 쓰인 내용들 위주로 정책을 짠다. 그러다 보니 좋은 단어가 있으면 그걸 짜 맞춰 정책을 짠다. 그래서 스마트팜, 6차산업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어느새 농식품부 정책자료 종이에 도배된다. ‘경쟁력 강화’가, ‘안전한 농산물 생산’이 좋은 단어라 생각해 그걸 농업정책 전반에 그대로 적용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작용하다보니 ‘어쩌면 이렇게도 농민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내용일까’ 싶은 정책이 종종 튀어나온다. FTA가 그랬고, 쌀 수입 확대가 그랬고, 규제 강화 위주의 친환경농업 인증제도가 그렇다. 물론 일반화는 금물이다. 기자가 만난 공무원들 중엔 직접 현장 농민들을 만나러 다니며 그들의 고민을 듣고 정책에 적용하려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책 전반을 결정하는 대다수의 관료들은 여전히 ‘지상담농’ 중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농민들은 늘 말한다. “농식품부 장관이나 공무원들이 하루라도 현장에 와 봤으면 좋겠다”고. 농업은 종이 위가 아닌 흙 위에서 이뤄진다. 관료들은 농민들의 고민이 뭔지,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현장에서 직접 농민들을 만나며 농정경험을 쌓아야 한다. 조괄은 조나라를 멸망하게 했지만 관료들은 우리 농업을 살리는 데 나서야 하지 않겠나.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