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이너스 농사, 오늘도 농촌은 “쉽지 않다”

[신년특집] 농민권리보장과 농민수당
속수무책 가격폭락에 생산비는 고공행진
정부·정책 바뀌어도 농민 고충 여전해

  • 입력 2017.12.29 23:54
  • 수정 2017.12.29 23:59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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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계속된 가격 폭락에 선별 수수료라도 줄여보고자 부부는 임시로 마련한 선별대에서 수확한 고추를 나눠 담고 있었다. 흙냄새 나는 시골이 좋아 밀양에 자리를 잡았다는 부부는 아끼고 아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땅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 노력한 만큼 내어주는 게 땅이고 농사잖아요.”

지난해 12월 26일 경북 밀양시 무안면에 위치한 시설하우스에서 청양고추를 재배하는 박문수(42), 오미영(41) 부부를 만났다. 기자는 가격이 폭락해 생계유지가 막막하다는 부부에게 그럼에도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수확한 고추를 선별하던 부인 오씨의 답은 꾸밈이 없었다.

일반적인 농업도 마찬가지나, 시설재배의 경우 시설을 유지·운영하는 데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 폭락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특히 겨울에는 작물생육을 위해 가온을 피할 수 없어 난방비까지 가중되므로 어느 정도 가격이 유지되지 않으면 농가는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구조다. 거기다 지난 2015년 이후 청양고추 가격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하락했다. 주산지 밀양의 경우 자본력 있는 귀농인이 대규모로 하우스를 운영하며 청양고추 재배에 나섰고 인접 지역에서도 고소득 작물이란 인식이 퍼지며 재배면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수확량 증가에 소비침체까지 겹쳐 12월부터 2월은 청양고추가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10kg 한 박스의 도매가격이 2만원을 간신히 유지하는 추세다.

부부처럼 청양고추 시설하우스 배를 하는 경우 9월 초 묘목을 심은 뒤 60여일이 지난 11월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수확기엔 열흘에 한 번 인력을 들여 고추를 따는 데, 한 사람이 종일 7상자 정도를 수확한다. 하루 인건비가 6만5,000원 정도임을 감안하고 고추 한 박스를 2만원이라 가정하면, 농가에겐 7만5,000원의 수익이 돌아간다. 하지만 박스 값과 난방비, 운송·선별 등의 수수료와 농약대까지 제해야 할 생산비가 수두룩하다. 결국 적자가 불가피한 현실이다.

부부는 선별 등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너무 많아 공선출하도 포기했다고 밝혔다. 부부가 직접 고추를 직접 선별하고 포장·출하하는 방법을 택해 수수료와 인건비라도 줄여야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선별대 앞에 선 오씨는 한숨 쉬듯 “시골이 좋아서 15년 전 남편과 서울서 밀양으로 내려왔지만 매년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난방비는 물론 인건비, 수수료까지 어느 하나 값이 안 오르는 게 없다. 가격정찰제가 없는 농약·비료는 부르는 게 값이고 결국 고추 가격 뺀 나머지만 배로 비싸졌다”며 “선거 때만 돌아오면 다들 농민을 위해 일하겠다 말하지만, 지나고 나면 남는 공약도 없고 실제 우리 생활이 어떤지 알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게 현실이라 이젠 기대도 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6살과 12살, 7살 막내까지 세 자녀를 둔 박씨는 “한창 학원도 다니고 할 시기인데, 고추 가격이 폭락해 마이너스 농사를 짓고 있으니 이럴 때 마다 최저가격보장제 같은 제도로 어느 수준 가격이 유지되고 농민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손기혁 밀양시농민회 무안면 총무는 “농촌이라고 무슨 혜택을 받겠다는 게 아니다. 굳이 안 줘도 되고 줄 필요도 없는 데, 우리가 받는 가격하고 도시 소비자 가격이 너무 차이나는 게 문제다”라며 “우리는 고정수익이 없어 난방비 낼 대출도 받기 힘들고 가격은 갈수록 형편없어 밭을 갈아엎는 수밖에 없는데, 소비자들은 사먹는 입장에서 비싸니까 뭘 얼마나 더 받아야 되냐고 한다. 중간 과정에서 빠지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농업에 종사하고 또 농촌에 거주하며 느끼는 고충을 하나하나 듣다보니 공기가 무거워졌고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와 함께 면내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한 뒤 주변을 둘러보던 손총무는 “2년 전만 하더라도 하우스에 인력들을 대느라 버스타고 외지에서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식당마다 농사꾼이 빽빽했는데, 지금은 다들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그러는지 그저 휑하구만”이라며 씁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뒤 헤어지던 찰나, 무거운 분위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손총무는 마지막 한 마디를 기자에게 덧붙이며 돌아섰다.

“그래도 죽을상이라고 쓰진 말아줘요. 농민은 항상 웃는다고 써줘. 힘들어도 웃는 게 농민이라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웃으면서 언제 오를지 모를 좋은 시세 기대하며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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