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각료회의 대응한 ‘민중정상회담’

WTO 각료회의, 합의 없이 '무산'

  • 입력 2017.12.15 16:17
  • 수정 2017.12.15 17:01
  • 기자명 아르헨티나=심증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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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WTO 11차 각료회의가 개최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각료회의에 대응하는 민중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민중정상회담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11일부터 13일까지 이어졌다. WTO 각료회의가 힐튼호텔에서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자본의 이익을 강화하는 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사회과학부에서는 전 세계 농민단체를 포함한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WTO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의제에 대한 토론이 ‘민중정상회담’ 이름으로 진행됐다.

민중정상회담은 11일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 ‘자유무역과 부채, 기업권력에 저항하는 주권과 권리’ 등 11개의 포럼이, 12일에는 ‘식량주권1’,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 등 10개의 포럼이 13일에는 ‘식량주권2’, ‘사회적 민중경제’ 등 7개의 포럼이 개최됐다.

이 중 비아캄페시나 소속 농민단체들은 11일 ‘자유무역과 부채, 기업권력에 저항하는 주권과 권리’, 12일에는 ‘식량주권1’, 13일에는 ‘식량주권2’ 포럼에 참여했다.

각각의 포럼은 각국에서 자유무역 확대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상황과 민중들의 처지에 대한 보고, 국제적 연대방안을 위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3일간 개최된 민중정상회담은 참가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매번 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한국 대표단은 12일 식량주권 포럼에서 한국농민의 상황을 발표했다. 김상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한국농민들에게 쌀은 생명과 같은 의미다. 그런데 쌀값이 폭락해서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11일 밥쌀 수입을 발표했다. 이는 WTO의 강요에 의한 것이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한국의 민중들은 연인원 120여만명이 촛불을 들어 반민중적이고 부패한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지만 새 정부 역시 민중들의 염원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헌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농민권리를 담아내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것을 관철하기 위해 더욱 투쟁을 강화해 나갈 것이며 12월 28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한국의 식량주권이 위협받는 상황과 전여농이 실천하고 있는 대안운동에 대한 발표를 했다. 정 사무총장은 “한국정부의 일관된 수입개방 정책과 저곡가 정책으로 농산물 가격이 낮아져 이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시장개방의 확대로 인해 식량주권이 위협받고 있다. 더불어 종자는 초국적 자본에 의해 국내 종자 생산기반이 무너진 탓에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전여농은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반 GMO운동, 언니네텃밭의 꾸러미 사업, 농생태운동의 대안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민중정상회담이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사회과학부 앞길에는 간이 시장에 개설됐다. 민중정상회담에 맞춰 아르헨티나 원주민단체 소속 원주민들이 농산물, 가공식품, 수공예품 등을 가지고 나와 매대를 설치하고 판매를 했다. 이들은 물건 판매와 더불어 신자유주의가 남미 원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나왔다.

이 밖에 다양한 포럼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민중 단체들이 참여해 실태를 공유하고 향후 투쟁과 관련해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이번 민중정상회담은 13일 대규모 투쟁을 모아내는 주요한 동력이 됐다.

카톡으로 동시통역 중계

이번 한국투쟁단의 여정엔 영어 통역사 1명과 스페인어 통역사 2명이 동행했다. 문제는 행사용품이 많아 통역장비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역장비 없이 동시통역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행사 내용을 공유하기란 막막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시도한 묘안이 카카오톡을 통한 문자 통역 중계다. 통역사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문자로 통역을 중계해 참가자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농민투쟁단을 지원하는 전농, 전여농, 녀름연구소 실무자들도 아르헨티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는 부수적 효과도 얻었다. 반면 동시통역을 문자로 입력해 전송하는 통역사들의 고생은 더욱 가중 됐다.

한국 농민투쟁단의 이같은 창의적 통역 시스템에 세계 농민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WTO 11차 각료회의 저지 투쟁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 한국투쟁단 단체 카톡방에 동시통역사들의 통역 내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WTO 제11차 각료회의 무산

한편 WTO 제11차 각료회의는 단 한 건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폐회 했다. 

이번 각료회의에서 농업부문에서는 공공비축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책과 보조금 한도문제가 쟁점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공공비축에 대한 영구적 해결책에 대해 미국가 인도가 대립하는 가운데 미국측 12인의 대표단이 돌연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사실상 각료회의 무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마크리 대통령은 작은 성과라도 남기기 위해 직접 나서서 애를 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단지 앞으로 계속 논의를 진행한다는 무의미한 결론만을 남겼다.  

이번 각료회의의 무산은 WTO의 수명이 다 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복잡한 세계 무역질서에서 다자협상에 한계가 도달했으며, 특히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는 WTO를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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