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39] 큰 집과 작은 집

  • 입력 2017.12.08 13:43
  • 수정 2017.12.08 13:44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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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8년 강릉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그 후 50여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았다. 2001년에는 작은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받아 경기 광주 오포에 꽤나 큰 집을 마련하고 별 생각 없이 지금까지 만족하며 살았다. 당시만 해도 큰 평수의 아파트나 집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 나는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에 자기 공간을 하나씩 주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나의 서재를 갖고 싶었다. 아파트로는 그런 공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전원주택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함께 살 것 같았던 아이들은 결혼과 직장 등으로 집을 떠났고 나도 은퇴 후 지난해 양양으로 귀농하고 보니 이 큰 집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팔려고 내 놓아도 임자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가격을 낮춰도 보았으나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대지면적도 작고 집도 아담한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에 대한 수요는 제법 있으나 큰집은 인기가 없는 것 같다.

현재 귀농한 양양에서는 농장 부근 농가의 작은 방을 얻어 살고 있다. 뭔가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데 큰 집은 다시는 더 이상 짓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난방비가 많이 들고 청소와 관리하는 일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귀농 3년차인 내년에는 농장에 작은집이라도 지어볼까 하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운영하는 ‘작은집 짓기 학교(충북 괴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7박 8일간 집짓는 전 과정을 실습하고 배우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막상 배워보니 집을 짓는다는 것은 수십 수백 가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내 실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서 교육생 동기들이 지어 놓은 5.5평 작은집을 분양받을 예정이고 빠르면 내년 초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에 농장에 갖다 놓을 예정이다. 비록 농막크기의 작은 집이지만 있을 건 다 있고 둘이 살기에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옆으로 창고를 큼직하게 붙이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노후에 큰집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작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인생 후반부의 삶의 철학과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인생 후반부에는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이 소박하게 살기로 한 나의 작은 철학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나도 큰 집이 우상이었으나 이제는 이를 반성하고 작은 집에서 자연과 더불어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동안의 오류를 조금이나마 만회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작아서 불편할 수도 있는 작은집과 이런 후반부의 삶에 동의해준 아내에게 무엇보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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