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농어업회의소와 법제화 - ‘성공사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입력 2017.11.05 11:31
  • 수정 2017.11.10 09:3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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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이 7년째 늘어지며 일각에서는 법제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책의 대상인 농민은 이미 설치된 회의소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현황과 평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시범사업 사례들을 둘러보고 이대로 법제화가 진행될 경우 발생할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본다. 지난 순서에 이어 유일하게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거창군농업회의소를 김훈규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본다. 

 

1. 농어업회의소가 문 닫은 이유

2. ‘성공사례’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

3. ‘농어업회의소의 전국화’가 가능할까

 

 

본인은 ‘성공사례’가 아니라 ‘버틴다’고 표현하는데.

말 그대로다. 시범사업이 막 시행되던 시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나름 희망적인 메시지를 많이 던졌었다. 2차, 3차 시범사업지가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관에서 법제화는 책임지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아시다시피 그러다 정부의 의지가 사라지면서 결국 우리가 알아서 다 하는 상황이 됐다. 우리 인건비도 알아서 챙겨야하고, 사업 영역도 기획해야하고, 다른 지역 회의소 출범을 중앙에서 돕지 않으니 그들을 돕는 것도 결국 우리의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정부 지원을 받거나 독자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 거창도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창은 상근자가 3명이다. 지방재정법으로 인건비 등 운영에 관한 비용은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 없어서 직원들은 최저임금 수준에 겨우 맞춘 급여로 일하고 있다. 운영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회비 수입을 늘리기 위해 회비를 월 2,000원에서 5,000원으로 인상했다.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함과 동시에 회원들이 회의소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시험해보고도 싶었다. 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일부 고령농들의 이탈이 조금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회비수입은 올랐다. 인상 뒤에도 신규 가입 농가가 있다. 현재 가입 농가 수는 800세대로 전체 농가의 약 8%정도다.

 

거창에서의 역할을 자평한다면.

지금은 이곳 농민단체협의회(농단협) 뿐만 아니라 소속 농민단체들도 각각 상근자 1명의 임금조차 제대로 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농단협에 비해 상근 인력을 어떻게든 제대로 갖추고 있는 우리 회의소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우선 지역 농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협치 농정을 구현하는 부분이다. 회의소는 단체장의 공약 이행 성과를 점검하고 조언하고 지방선거가 있을 땐 후보에게 농민들이 원하는 공약도 제안한다. 각 농민단체의 고유의 의견을 존중하되 짜임새 있게 모아서 정책성 사업을 추진하는 게 5년간의 실험을 통해 가능해졌다.

회원들에게는 그들만이 조금 더 빨리 받을 수 있는 농업 정보를 제공하며, 농민이 스스로 원하는 교육 내용을 파악하고 일정까지 맞춰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GMO, 밥쌀 수입과 같이 농민에게 중요하지만 관에서 접근을 꺼리는 사안에 대해 알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중요한 건 농민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대척점에 있는 패널을 불러 토론하게 하면 이를 지켜 본 농민들이 판단을 내리고, 이는 다시 지자체로의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 비록 정책 수립의 주도권을 민간이 가져갈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중간 지대에서 소통을 담당하는 데 있어 회의소만한 구조는 없다 말할 수 있다.

 

지난 7월 거창군농업회의소가 주최한 창립 5주년 기념 강연에 참석한 농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이날 강연을 맡았다.거창군농업회의소 제공

 

거창만이 돋보이는 것은 결국 ‘김훈규’ 개인의 역량 덕이라는 평가도 있다. 

법제화가 된다고 해서 같은 사례가 이어질 수 있을까.

맞다. 그런 측면에서 법제화가 사실 답은 아니다. 법 만들어진다고 시스템이 똑같이 발동이 될까. 그러나 현장의 입장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생업을 버리고 뛰어든 것처럼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협치 농정에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창은 최악의 상황에서 버텨낸 만큼,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있지만 계기가 없어 주저하던 지역에서 회의소를 중심으로 협치 구조를 짜보자는 말이 나오면 거창 이상의 빛을 발하는 회의소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어느 정도의 폐단은 생길 수밖에 없다. 회의소가 공적기관이 돼 한 자리 차지하려든다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 전국 중앙조직의 권력을 넘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조건과 사람까지 갖춰졌다고 해도 안 되는 곳에서는 절대 안 될 거다. 지역의 오랜 역사를 통해 정책의 효용과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있는 곳에서는 좋지 못한 사례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마련이다. 회의소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생각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법제화 여부를 떠나 관치 농정을 엎고 농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며 협치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10년 동안 협치에 애쓴 옥천군의 농업발전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군의회의 독단 속에 해체되고 말았다.

농어업회의소가 그 협치 구조를 공적화하는 도구로서 자리 잡으려면, 법제화와 이후 과정은 현장에서의 준비가 우선 된 뒤 지역 회의소를 설립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 사람과 환경이 준비된, 거창과 같이 협치를 하고자 하는 지역에는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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