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 재고처리, 정부는 중개소 역할만”

2016년산 주정용 1만톤·2017년산 계약재배 외 5천톤 처리 ‘합의’
정부, 식량작물 수매자금 338억원 ‘담보 조건 부족’ 이유로 풀지 않아
농협중앙회, 2019년까지 판매키로 한 주정용 선지급 ‘해결사’ 주

  • 입력 2017.10.27 21:08
  • 수정 2017.11.07 17:3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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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우리밀 재배 농가들이 우리밀 재고과잉 문제 해결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중개소 역할만 하고 있다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밀 자급률 달성을 위해서라도 공공비축미곡 수매 지정 등 정부의 직접적인 예산을 열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영록)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재고과잉으로 중단됐던 국산밀 수매 확대 길이 열렸다”면서 한국주류산업협회(주류협회)와 국산밀산업협회(국산밀협회)가 2016년산 재고 밀 1만톤을 주정용으로 특별 처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처분의 배경에 대해선 작년부터 지속된 우리밀 재고과잉으로 밀 협회 수매 회원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져, 2017년산 밀 농가 수매대금 지급이 지연되고 2018년 수매계약 여부까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 중재 결과 주류협회가 2018~2019년 사이에 주정용 1만톤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인수가격은 40kg 주정용 쌀보리 계약가격에 준해 3만9,000원이다. 이번 수매대상 회원사는 한국우리밀농협, (주)우리밀, iCOOP생협, (주)밀다원, (영)광의면특품사업단 등 5개사다. 농식품부는 수매자금이 부족한 국산밀협회 회원사들에겐 농협경제지주가 자금을 융자지원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산밀 수매 확대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 농민들의 항변이다.

전남 진도에서 우리밀 농사를 짓는 곽길성씨는 “2016년산 1만톤을 주정용으로 판매한다는 내막을 살펴보면, 창고 가득 쌓여있는 재고밀을 내후년까지 쟁여놔야 할 가능성이 짙다. 또 농협을 통해 수매자금을 융자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우리밀 자급률 5.1%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하는 구체적인 사업은 뭔가”라며 속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밀 자급률 현황을 들어 쓴소리를 했다.

현재 시급히 처리해야 할 우리밀 물량은 2016년 재고 1만톤과 계약물량 이외의 2017년산 5,000톤이다. 정부 보도 대로라면 2016년 재고 1만톤은 주정용으로 계약이 체결됐고, 신곡 우리밀 5,000톤은 농협중앙회 수매자금 융자로 해결된 셈이다.

하지만 그 안에 복잡한 셈법과 농협이 자금을 부담해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다. 이번 주정용 1만톤 처리는 1차 5,000톤·2차 5,000톤 등 2단계로 수매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1차에 18억원, 2차 40억원 등 농협중앙회가 총 60억원 가량의 주정용 수매자금을 지원한다. 주류협회가 주정용 우리밀을 일시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 자금이 시급한 우리밀농협 등 회원사들은 농협중앙회에서 융통한 주정용 자금을 활용해 2017년 계약재배 이외의 우리밀을 수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우리밀 과잉재고 해결의 주인공은 농협중앙회인 셈이다.

진도 농민 곽길성씨는 “이번 재고밀 처리 과정에서 농식품부는 손 안대고 코 푼 격”이라며 “정부가 주류협회며 국산밀협회, 농협중앙회 등 사이에 ‘중개소 역할’에 그치는 것은 직무유기다. 부담은 농협중앙회가, 생색은 농식품부가 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관계자는 “밀 재고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다”면서 “우리밀농협 등이 2016년산 처리를 하지 못해 우리밀 수매자금 확보에 애를 먹었는데, 재고밀을 담보로 수매자금 융자를 청원했으나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 논란 등 여러 우려 속에 무산돼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우리밀은 현재 쌀, 콩 등과 함께 공공비축미 품목으로는 지정돼 있으나 쌀처럼 예산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고 있다. 또 농안기금 중 ‘식량작물 수매자금’ 338억원을 우리밀 수매에 융통하는 문제도 부동산 담보 등의 조건 탓에 매년 40~50억원 정도만 융자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우리밀 자급률 목표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밀 공공비축미 예산편성 등 보다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밀 재배 현장의 이구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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