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들녘에서 만난 농민들

“농촌은 여전히 힘겹다”

  • 입력 2017.09.22 16:23
  • 수정 2017.09.22 16:3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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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고 백남기 농민의 고향인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앞 들녘에서 같은 마을 주민인 선영환(71)씨 부부가 지난 19일 올벼쌀을 수확해 톤백에 담고 있다. 선씨는 “(새 정부에서)쌀값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한승호 기자
도시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인구 감소로 향후 수십 년 내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사람들은 떠나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원인은 따로 있지 않다. 그들의 근간이자 일터인 농촌과 들녘이 노동의 대가를 돌려주지 못하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고 백남기 농민을 비롯해 수많은 농민이 떠나간 보성의 들녘. 그곳에 남은 이들의 한숨과 무기력함을 통해 그가 자리를 박차고 상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되새겨본다. 

 

쌀의 재배면적과 생산량, 농촌의 수 모두 전국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남 지역은 공교롭게도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소멸 위기에 처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연구 ‘한국의 지방소멸 2’에 따르면 전남은 65세 인구 대비 가임기 여성 인구 비율로 나타낸 ‘소멸위험지수’가 0.48까지 떨어져 ‘소멸 위험’ 단계에 돌입했다. 보성만 예를 들어도 전체 주민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으로, 전남 지역 평균(21.4%)보다도 월등히 높다.

쌀과 농업에 대한 지역 경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지역 사회는 올해 강력한 쌀값 보장 대책을 원하고 있다. 문병완 보성농협 조합장은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자동시장격리’를 꼽았다. 문 조합장은 “RPC들이 국가가 예측한 소비량에 따라 수매 계획을 세우는데, 그 예측이 틀렸을 경우 매해 자동적으로 남는 쌀을 격리하지 않으면 해결은 어렵다”면서 “RPC들의 출혈경쟁을 막아야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농업을 지킬 예산을 얻지 못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현실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도 지적했다.

 

“밭일은 해보고 생산조정 얘기하나”

그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생산조정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놨다. 그는 “현재 고정·변동직불금으로 지탱되는 소득 수준도 보장되지 않거나 혹은 비슷한 수준이더라도 (논농사가 훨씬 편리하기에) 시행 의미가 없다”며 농가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또 “전환 면적을 얼마나 바꿨는지의 실적 위주로 갈 것이 아니라 수급 상황을 고려해 체계적인 작물 분배가 이뤄져야한다”며 시행 이후 작물전환 농가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위한 정부의 의무를 강조했다.

“여기서 우스갯소리로 ‘밭작물 하는 사람은 1년에 2.5기작을 해서 1.5기작은 병원에 주고 1기작만 자기가 갖는다’는 얘기를 합니다.”

복내면에서 만난 농민 윤용목(65)씨는 생산조정제와 대체작물 얘기를 꺼내자 비 오는 날 만원이 된 보성아산병원의 풍경을 그렸다. 쪽파 주산지로 꼽히는 보성에선 쪽파를 심은 밭에 감자, 마늘 등을 연이어 심으며 2년 동안 다섯 번의 수확을 한다. 엄청난 노동의 무게를 짊어진 대가로 농사가 겨우 이어진다. 쉬이 쌀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단보(300평)에 30만원을 줘서는 효과가 없어요. (대상이 주로 사료 작물이라고는 해도)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힘이 훨씬 더 든다는 건 아시죠. 수입도 그렇고. 농민의 소득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된다는 거죠. 40만원만 줘도 할 사람이 꽤 될 겁니다.”

 

수발아 피해가 발생해 나락을 걷어낸 논에서 지난 19일 선방숙(63, 전남 보성군 웅치면)씨가 시래기 무 씨앗을 파종한 뒤 물을 주기 위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직불금이 지탱하는 쌀농가

작년 보성의 쌀값은 kg당 900원. 40kg당 가격이 4만원에도 한참 못 미쳤다. 기대 소득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농민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윤씨의 말을 곱씹으며 웅치면으로 향했다.

“1단보 농사지었을 때 보통 40kg 15개, 15개면 4만원 잡아도 60만원. 근데 거기서 논수(임대료)가 비싸면 30만원, 모내기가 4만원, 로터리 치는데 6만원, 나락 베는데 7만원, 농약이랑 볍씨, 못자리하면…. 거기다 기계 있으면 아무래도 이웃 것도 해 줘야되는데 면세유도 너무 적게 주고.”

웅치면 중산리 그의 논두렁에서 만난 선방숙(63)씨는 쌀농사 얘기가 나오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가 얻을 순수익은 40kg당 3만6,000원인 지난해 쌀값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그는 추수 후 겨울에도 일하기 위해 논 옆에 시래기 무를 심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농한기에 할 일이 없어서 심어보는 것이지 이것도 딱히 눈에 띄는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작년에도 내가 10단보를 해봤는데 인건비가 무시 못해. 인당 하루에 7만~8만원. 계약재배 했는데 사가는 가격은 kg당 겨우 300원이야. 400원, 500원 달라고 해봤는데 죽어도 안 올려줘. 그러고서는 조금 가공해서 자기들이 파는 가격이 kg당 1,500원이야.”

물을 줄 호스와 스프링클러 가격 등등. 선씨는 쌀값만 빼고 모든 것이 다 올랐다며 시래기 무 밭에 들어간 원가에 대해 또 다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사실상 쌀 직불금이 순수익의 전부인 만큼 그 역시 목표가격의 상승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촌놈들 말을 들어줘야 말이지. 문통이 얼마나 해주실지는 모르것는디 그래도 기대는 해봐야죠.”

 

“이곳은 곧 사라질 공간”

“제가 여기 20년 전에 시집왔거든요? 그때 쌀값보다 지금 쌀값이 훨씬 더 싸요. 제가 지금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웅치면사무소 너머 강산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젊은 농민을 만날 수 있었다. 연로한 이웃 농민의 올벼쌀 수확을 위해 콤바인으로 작업에 나선 손요섭(45)·전미옥(50)씨 부부였다. 아직 취직 전인 20대 자녀 둘을 도시에 둔 전씨는 마지막으로 저축을 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농사로 버는 돈은 전체 수입의 절반 정도 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이렇게 농기계 작업하고 굴삭기도 해서 버는…. 그나마도 이렇게 논이 많으니까 일이 있어서 하죠.”

그들이 20년 전 이 일에 뛰어들 때의 콤바인 삯은 4만원이었지만 지금은 7만원이다. 삯은 두배가 채 오르지 못한 반면 기계 가격은 세배 가까이 뛰었다고 전씨는 회상했다. 그때보다도 후퇴한 쌀값까지 생각하면 그의 말대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기계 돌려 줄 이 친구들 없으면 농촌 안 돌아가. 근데 이제 마을마다 젊은 사람 기껏해야 한둘이야. 큰일이지.”

부부에게 콤바인 작업을 의뢰한 이성구(68)씨는 앞으로 십수년 내 농촌이 사라지리라고 담담히 얘기했다. 또 다시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쌀농사의 원가 이야기를 15분 간 듣고 나서였다. 이들이 곧 농사지을 수 없게 됐을 때 과연 뒤를 이을 농민이 나타날 수 있을까. 허공을 움켜쥐는 것 같은 나라의 안보정책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듯한 이씨는 자리만 마련해준다면 대통령과 정치인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할 자신이 있다며 열을 올렸다. 그의 날카로운 공격을 공청회에서 볼 기회는 결국 없을지언정, 내가 가진 지면에라도 담고 싶었다.

“농촌이 망하면, 솔직히 지금 이북의 핵무기가 문제가 아니야. 미국이 핵 가지고 염병하는 거 무기 팔려고 그러는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근데 만약에 말이야, 사람의 생명줄인 식량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냐 이거야. 안보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이 말이야.”

 

웅치면 농민 이성구(68)씨는 사람이 사라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설명하며 “정치인들이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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