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떨어졌으나 바람은 불지 않았다?

불합리한 보상기준과 자부담율 … 유명무실 농작물재해보험

  • 입력 2017.08.26 10:47
  • 수정 2017.08.26 11:14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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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1일 갑작스레 불어닥친 강풍에 출하를 열흘 앞둔 배가 떨어져 과수원 바닥을 뒹굴고 있다. 조원희 상주시농민회장 제공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서 배농사를 짓는 조원희 상주시농민회장은 수확을 열흘 앞둔 시점,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낙과피해를 입었다. 350~400상자에 달하는 배가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가입한 농작물재해보험으로는 피해보상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인은 재해보험 자체의 불합리한 보상기준과 자부담율에 있다. 피해를 야기한 당시의 풍속이 농작물재해보험에서 인정하는 강풍 기준에 못 미쳐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재해보험은 태풍과 강풍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한다. 보험약관상의 태풍은 기상청에서 태풍주의보·태풍경보 등 기상특보를 발령했을 시 발생지역의 바람과 비를 말하는데, 최대순간풍속 14m/s 이상의 바람(강풍)을 포함한다. 풍속의 측정은 과수원에서 가장 가까운 3개 기상관측소에 나타난 측정자료 중 가장 큰 수치의 자료로 판정하며 관측소는 기상청이 설치했거나 인증해 실시간 관측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관측소를 말한다.

이는 강풍이 불어 낙과피해를 입어도 풍속이 14m/s를 넘지 않은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또한, 기상관측소가 과수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관측치의 정확성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엄태식 NH농협손해보험 농업보험지원부 차장은 “최대한 농가에 유리한 기준을 적용하고자 최대순간풍속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관측소는 고민하는 점 중 하나”라며 “관측소 위치에 따라 여러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엄 차장은 “관측소에서 강풍으로 인정하는 바람이 불어도 농가엔 바람이 안 불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공인·인증된 관측소의 관측치만 인정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높은 자부담율도 재해보험의 문제 중 하나다. 보험사는 낙과 발생 후 이틀만인 지난 23일 조 회장의 과수원을 조사했으며 피해·낙과율은 12%로 집계됐다. 하지만 보험상품의 자기부담율이 20%기 때문에 보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자기부담율의 경우, 피해금액이 아닌 계약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재해로 인한 피해가 20%를 넘지 않는 경우 농민은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조 회장은 “과수원에서 가장 가까운 관측소가 6km 넘게 떨어져 있는데 그 관측결과로 보상여부를 판단한다. 또 피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풍속을 보상기준으로 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민이 기껏 농사지은 작물을 일부러 망치는 경우가 어딨느냐”며 “자부담율을 설정하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농작물재해보험은 「농어업재해보험법」을 근거로 2001년 도입돼 2017년 현재 58개의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법령은 농어업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농작물 등의 피해에 따른 손해를 보상함으로써 농어업 경영의 안정과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보험에 가입해도 보상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합리적이지 않고 자부담율도 높아 농가는 피해를 입어도 보상은커녕 손해만 고스란히 안고 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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