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32] 달걀과 풀

  • 입력 2017.08.25 12:02
  • 수정 2017.08.25 12:07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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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충제 달걀파동을 겪으면서 달걀은 물론 전반적인 농축산물 친환경 인증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신뢰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쌓여간다. 그러나 이것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초보 친환경 인증 농가인 나는 사실 어안이 벙벙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친환경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고 인증농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최근의 파동과 관련해 가장 큰 비난은 농민 생산자와 정부 당국인 것으로 보인다. 쓰지 말아야 할 물질을 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친환경 인증 농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정부는 친환경 인증은 민간에 맡겨 두고 GAP 등의 인증에만 열을 내다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측면이 있는데, 이는 정부의 우선순위 사업이 뒤바뀐 것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제대로 된 친환경 농축산업은 GAP이나 관행농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우며 경영측면에서도 매우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 챙기고 독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농민을 대변하자면 치열한 계란 산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용절감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보기 좋고 그럴듯한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엄청난 중압감이 이들을 탈선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한다. 정부도 온통 눈에 띄는 성과 달성에만 급급하다보니 어려운 일 보다는 쉽게 생색이 나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농민이나 정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경쟁력 지상주의라는 이념에서 그 본질적 원인을 찾고 싶다. 우리시대의 모든 가치와 경쟁력은 돈, 즉 물질로 평가된다. 자연도, 환경도,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도 물질 즉 돈으로 평가되는 가치실종의 시대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농업·농촌·생태·자연·환경·동물과 식물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조화와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는 안중에 없다.

이번 달걀 파동을 계기로 농민과 정부, 그리고 우리사회 모두는 인간과 자연, 환경과 생태, 농업·농촌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재조명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달걀만이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먹거리 안전 파동이 몰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내 작은 농장의 풀을 열심히 베어 밭에 깔았다. 사과나무와 벌레와 균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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