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품목별전국연합회 의도적 회피?

  • 입력 2017.08.18 08:44
  • 수정 2017.08.18 08:46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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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처음부터 출발 자체가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차선도 안 되는 차악을 선택했다는 점이 문제다.”

조공법인의 시작에 대한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의 지적이다. 농협이 2001년부터 시군지부 연합사업단을 만들었으나 참여농협의 실적을 연합사업단의 실적으로 부풀리는 등 여러 문제가 불거졌고, 경제성이나 효과성도 비판을 받은 상황에서 정부는 2004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조공법인 제도를 도입했다.

장 소장은 “연합사업단에 이어 조공법인 제도를 도입한 건 안정적 판로 확보와 적정가격 보장, 시장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인데 처음부터 정답이 나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멀리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이 강조한 정답은 ‘품목별전국연합회’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선 이미 품목별전국연합회를 해왔고, 농업계에서도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전국단위로 묶을 경우 당연히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되고 마케팅 파워도 생겨서다. 흔히 얘기하는 마케팅보드(특정 상품의 생산·유통에 대해 광범위한 지배력을 부여받은 유통관련 기관)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장 소장은 “최선의 대안에 미치지 못하는 2차, 3차안을 갖고 20년 동안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며 “조공법인은 태생부터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여기에 더해 “정부와 농협이 품목별전국연합회를 안 하려고 한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품목별전국연합회가 설립될 경우 통제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농협중앙회의 힘이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협의 경우 시군지부 연합사업단은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하지만 조공법인의 경우 독립법인이기 때문에 출자조합을 통한 통제를 해야 한다. 또한 조공법인은 경제사업을 하는 독립법인이라는 점에서 신용사업을 제외하면 농협 자회사와 다를 게 없다. 농협이 조공법인보다 연합사업단을 선호하는 이유들이다. 이는 농협이 품목별전국연합회를 의도적으로 회피한다고 지적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의 입장에선 유통활성화사업은 해야 되는데 농협이 받을 수 있는 안이 필요했고, 농협도 조공법인까지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은 신용·경제사업 분리 등 사업구조 개편과 맞물려 조공법인의 전략적 육성보단 선택적 포섭으로 방향을 틀었고, 정부에선 정권이 바뀌거나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 이후 끼워질 단추들이 어긋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정부자금을 타기 위한 조공법인 설립과 경영적자, 폐쇄적 운영, 경합 등의 문제가 불거졌고, 무엇보다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장 소장은 “연합사업단과 조공법인 중에 어떤 체계가 더 나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핵심은 농민의 눈높이에서 과연 시장경쟁력이 갖춰졌나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조공법인 제도는 여러 문제로 인해 규모화, 전문화, 효율화라는 애초의 의도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산지를 중심으로 브랜드가치를 살려 교섭력을 끌어 올린 사례도 있다. 장 소장은 “품목별전국연합회를 만들면서 조공법인은 자연스럽게 해체하면 된다”며 “조공법인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전수조사에 기반해 잘 하는 조공법인은 손댈 필요 없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합류여부를 결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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