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소시장에서 목놓아 울다

김훈규 거창군농민회 연대부장

  • 입력 2008.04.28 01:40
  • 기자명 김훈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훈규 거창농민회 연대부장
지난 21일 새벽, 거창 읍내 소시장. 이날의 농민들의 낯빛은 여느 때 보다 더 어두웠다. 며칠전 타결된 한미쇠고기협상 소식을 들은 후 열리는 첫 장날이라 얼마나 소 값이 많이 떨어졌는지가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부터 얄궂은 소식을 들어온 터라 소 값이 불안한 상태였는데다, 이날의 가격하락은 그 시름을 완전히 절망으로 꺾어 내리는 신호탄이었다.

여기저기 소값 흥정하는 곳에서, 경매가 이뤄지는 곳에서 온갖 욕설과 한숨이 이어졌다.

국제유가, 곡물가 인상에 따른 사료값 인상에 의해 축산농가의 어려움이 연일 전국 농촌 방방곡곡에서 통곡소리로 이어지는 때에, 지난 18일 발표된 한미쇠고기협상 타결의 소식은 농민들을 거의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닭, 오리 등 가금류를 기르는 농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발생으로 비상이 걸렸고, 소값, 돼지값 폭락에 의해 치솟는 사료값도 해결하지 못하는 축산농가의 줄도산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발표한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사료값 몇 푼 지원이 고작이고 그것마저 언제고 갚아야 할 빚으로 고스란히 남는 것이 그동안 내놓았던 정부의 모습과 무어 다를 것이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반 소비자들과의 만남의 자리나, 미국산 광우병소고기 바로알기 또는 한미FTA와의 연관을 강연하는 자리에서 온갖 동영상, 관련 자료를 싸들고 들어가서 두어 시간 떠들어도, 청취한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들의 저녁 찬거리를 구입할 때는 국산 한우만을 고집하지 못한다.

절반가격의 육우를, 또는 호주산 뉴질랜드산 수입쇠고기를, 그것마저 비싸면 더 연하고 맛난 미국산쇠고기에 손가락을 가리킨다. 찝찝해도…싼맛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우와 육우의 차이점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에, 한우와 미국산 소고기를 구분하여 먹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말인즉슨, 시중에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소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10년 뒤나 발병을 예측할 수 있는 광우병 위험인자를 고스란히 품고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고속도로휴게소, 기관단체의 식당, 군대나 경찰서의 식당, 학교나 병원급식, 심지어 장례식장 육개장까지, 다들 ‘소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미국산소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그 음식들을 주문하지는 않을 테니까.

레미콘차가 달리면서 사료를 주고, 한 마리씩 가둬놓고 겨우 앉았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는 협소한 사각공간에 햇빛도 들지 않게 가두고 초식동물에게 동물성사료를 주며 사육이 아닌 급속생산을 당하는 미국 소. 야맹증이 걸려야 육질이 좋다고 비타민A 공급을 막고, 햇빛에 의해 생성되는 비타민D를 차단하여 소의 스트레스를 증대시켜야 등급 좋은 ‘상품’이 된다고 믿는 그들은 이렇게 광우병과 그 이상의 저주를 자국민들과 우리국민들의 입으로 전하려 안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1990년 5월, 당시 영국의 농림부장관이던 존 검머는 자신의 4살박이 어린 딸과 함께 BBC 방송에 출연하여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직접 햄버거를 먹는 모습까지 전 국민에게 중계했다. 존 검머는 TV에서 “광우병이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전파된다는 증거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참조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증거들에 비추어볼 때 쇠고기는 안전합니다.”라고 했다.

그런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의 딸이 몇 년 전 인간광우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사실을, 미국 가서 부시에게 소고기 걸판지게 대접받고 온 이명박 대통령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한 신문사설에서 “그동안 미행정부와 의회지도부는 ‘쇠고기 문제가 풀려야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해왔다. 이제 그 조건이 충족된 만큼 미국은 한미FTA 처리에 속도를 내야한다. 한미 양국 모두 FTA를 살릴 이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말은 뭔가 눈가림이 있다.

미행정부와 의회지도부는 한국의 미국산쇠고기 시장개방의 수단과 방법으로 한미FTA를 활용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한미FTA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소고기시장 개방을 이용했고, 지금은 소고기협상 타결을 통해 미의회의 한미FTA 비준동의 등을 ‘베풀’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의회 지도부가 한미FTA를 바라보는 것은 부시의 8년 동안 추진했던 자유무역의 폐해로 인해 자국의 경제가 심각한 경기침체로 빠져들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미국의회가 한미FTA 비준을 쉽게 할 리 만무한 것이다.

굴욕적인 한미 정상간의 회담 이후 예상되는 것은, 앞으로 더 큰 선물보따리를 요구하는 미국에게 어떻게든 FTA체결의 우선원칙이라는 족쇄에 의해 미국소의 간, 쓸개 다 수입하는 조건으로 우리나라의 간, 쓸개는 다 내어줄 꼬락서니다.

소의 도축에나 쓰일 법한 전기 충격봉을 농민들 집회현장에 사용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이래저래 소만큼도 못하게 여기는 정부의 막 나가는 정책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김훈규 거창군농민회 연대부장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