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아버지와의 만남

  • 입력 2017.07.21 11:31
  • 수정 2017.07.21 11:33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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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회의 중 뒷골에 찡한 아픔이 머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오늘은 조바심으로 머리 끝이 터지려고 한다.

정성껏 마음을 맞추려고 여러 차례 말을 나눈 동네 형님들도 일을 뒤죽박죽 몰고 간다.

200가구쯤 되는 동네에 협동조합을 만드는 자리다.

창고로 쓰이던 40년 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서 ‘샵’을 만들고 협동조합은 일을 잘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여 있다.

한 두 차례가 아니다. 이미 열 번 넘는 교육, 수차례 견학으로 농사짓고 물질 밖에 모를 줄 알았던 어머니들까지도 협동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사회적 협동조합은 또 어떤 일을 하는 건지도 내가 알아가는 만큼 자기 생각들을 말할 정도가 됐다. 그래서 오늘은 회의가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믿지 못할 도끼들은 되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싸우면 짓던 집도 무너질 판이고 협동조합은 저 바다 건너 동네에나 있는 일일 테니 그냥 끝까지 참아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회관 창고를 치우면서 40년 전 만들어진 나무 현판을 봤다. 기꺼이 땅을 내준 어른, 동네사람 거의 다가 10만원이 넘는 돈을 보탠 것이 이름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봤다. ‘중동회관 건립 추진위원장’.

40년 된 동네 회관에도, 우리 마을 사무소가 세워지기까지도 힘을 가장 많이 들인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니… 내 기억속에 아버지는 어머니 말을 빌면 “쓸데없는 일에 껴서 집일은 하지 않고 맨날 술과 사람들만 데리고 온다”고 하시니 나에게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로 남아 버렸다. 회의를 끝내고 다시 모여서 풀어보자며 막걸리에 얼큰해진 오늘 그분들이 그립다. 그리고 도와달라 떼쓰고 싶다.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늘 바쁘게 집안을 휘젓고 다니시고 아버지는 사람들과 술로, 말로 밤 열두시가 넘어서 “밥 가져와라” 소리를 치신다.

어미는 집안일로 늙고 아비는 세상일로 늙어가는 걸까? 손이 크다고? 아니 마음을 크게 쓴게지!

어머니는 늘 넉넉한 밥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맞았다. 나에게도 우리집은 으레 사람이 많이 모이고, 모이면 어머니는 또 바쁘게 항아리를 퍼내야 하는 줄 알았다.

내 눈에는 늘 큰소리만 치던 아버지, 하지만 왜 사람들이 모였을까? 먹이고 달래며 끝까지 해낸 일들이 많아서, 같이 하자고 하면 “그래 너라면 같이 가보자!”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묻고 싶다. 지금은 고아인 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정말 애쓰셨다고 큰 박수를 보내 본다.

그 사람들의 셋째 아들로 커가던 날들에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어머니, 아버지처럼 넓은 품을 가진 어미, 쓸데없다는 세상일에 늙어가던 아비를 닮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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