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30]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 입력 2017.07.20 20:50
  • 수정 2017.07.20 20:51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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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새벽 5시 15분경이면 동해바다엔 태양이 떠오른다. 내가 살고 있는 물치항 인근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대포항이 나오고 바로 속초항이 나오는데 10여분 정도 걸린다. 나는 이 길을 매일 달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잠이 없어진지 꽤 오래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름철이면 거의 매일 드라이브 하면서 이제 막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오른편에, 설악산 대청봉을 왼편에 두고 달리는 황홀함이 너무나 좋다. 교회에 가서 간단히 기도하고 농장으로 바로 출근(?)하면 보통 6시 정도 된다.

폭염이 지속되는 요즈음 밭에 일이 있는 농민들은 6시면 나와 계신다. 5시부터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날씨가 더워 아침 9시만 되어도 30도가 넘으니 더 이상 밭일은 무리이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윗집 과수원에는 부부가 함께 오셔서 농사일을 하시고, 아랫집 농부도 깻잎 모종을 이제야 정식하면서 땀을 뻘뻘 흘린다. 위골 복숭아 키우는 농부께서는 1톤 트럭을 몰고 일하러 오신다. 나의 과수원이 있는 골짜기에서 농사지으시는 농부들은 다섯 분 정도 되는데 이제 거의 인사도 드리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 전부 소농이어서 복숭아, 오이, 호박 등 각자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조금씩 나눠 먹기도 한다.

새벽에 일한다고 덥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땀이 비오듯 한다. 정말 구슬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일도 하고 땀도 많이 흘려서 인지 한여름이 지나면 모두 날씬해진다. 나도 허리띠 단추 구멍이 여름만 되면 두 칸 정도는 준다. 그러고 보면 농부치고 배가 나와 고민하는 농부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수원 고랑의 풀도 베어주고, 방제도 하고, 토마토, 오이 등의 순도 잘라 주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밭에는 매일 3~4시간 정도의 일거리는 널려 있다. 8월말까지는 더위와 함께하면서 밭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9~10시 경이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셈이다. 집에 와서 씻고 아침 먹고 나면 졸음과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서 오수를 즐길 때가 많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바다에 나가 보기도 하고 설악산 비선대, 비룡폭포, 흔들바위, 사색의 숲 등을 가볍게 거닐어 보기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얼핏 보면 가장 여유있어 보이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난 지금 행복하다.

그러나 이 땅의 농업과 농촌, 농민은 동해의 저 떠오르는 태양처럼 황홀함으로, 희망으로 새 시대를 맞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과 우리 사회의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인식 수준이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도 한다. “신이여, 이 작은 자의 소원을 들어 주옵소서,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과 우리사회의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 수준을 바꾸어 주옵소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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