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쌀 생산조정제가 성공하려면

  • 입력 2017.07.14 11:35
  • 수정 2017.07.14 11:36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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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성만큼 강한 설득력이 없다.

어느 농촌마을에 가로수로 감나무를 심어놨는데 감이 익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단으로 따가니까 참다못한 이장이 ‘감을 무단으로 따가면 전량 변상조치’라는 현수막을 걸어 놨다. 그런데 붙이기 전보다 감이 더 많이 없어졌다.

그러자 이장은 다시 ‘감나무 가로수길, 즐기면서 안전운전’이라는 문구로 현수막을 바꿨더니 절도가 확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현수막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따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에 충분했고 부정적 글귀를 보는 사람들마다 인상이 찌푸려지고 반발심마저 생긴 것이다. 반면, 두 번째 현수막은 감나무는 모두가 즐겨야 하는 소중한 것으로 인식시켜 주었던 것이다. 이런 비슷한 실험은 많고 결과도 비슷하다.

긍정적으로 제안하면 기분 좋게 설득되지만 부정적으로 제안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더욱 고착돼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본다면 정부의 쌀 생산조정제 예산 확보 작전은 초장부터 실패했다. 문재인정부의 ‘강력한 쌀 생산조정제’는 국민들과 정치권에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고 이제 예산을 퍼부어 쌀 생산을 강제적으로 줄여한다는 인식을 고착시킨다. 당연히 쌀의 가치가 떨어지고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예산당국을 설득하기 힘들다. 쌀 생산을 줄여야 하니까 예산을 편성해달라는 주장 자체가 당당하지 못하게 된다. 예산당국에서 ‘직불금도 그렇게 많이 나가는데 또 쌀에 예산이 필요하냐’고 따지면 그저 우는 소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대통령이 약속하고 농식품부 장관이 직접 챙기는 것이라 내년부터는 예산이 편성되리라 본다.

문제는 그 예산은 2~3년 지나면 없어질 가능성이 크며, 지급되는 동안에도 국민들 눈에는 낭비성 예산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예산과 더불어 농민도 그렇게 취급받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시작했어야 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하는데 쌀 생산은 안정적이니까 이제 콩, 밀, 사료작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FTA 수입농산물로 인해 지어봤자 적자니까 농민들이 기피하고 있고 이로 인해 더욱 식량자급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고 그 지원은 국민들에게 안전한 우리 농산물로 매년 돌아온다.’

이런 방향으로 쌀 정책을 한 차원 높게 설정했다면 농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국민들도 더욱 농업을 사랑하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농식품부 관료들은 철학이 없었고 초조했다. 쌀 생산을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가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수를 둔 것이다.

늦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쌀 생산조정제 예산의 취지와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쌀만 보지 말고 식량자급 전체로 확장해 긍정적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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