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포스트휴먼 시대의 농업

  • 입력 2017.06.16 14:45
  • 수정 2017.06.16 14:46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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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섰어도 농업 정책에 있어서 특별한 묘책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농림축산식품 국내 무역수지 적자는 2015년에만 약 240억 달러로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더욱이 한국사회의 관심은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에 기반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자율운송수단, 3D 인쇄, 나노 기술 등으로 이루어진 제4차 산업 혁명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국내 바둑계를 비롯해 중국 바둑계마저 평정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 미래학자들이 종종 하는 낯선 말로서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이란 용어가 있으며,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을 인체에 적용하여 사물과 생체가 연결망으로 연계되어 정상보다 훨씬 강화된 생체 기능을 발휘하는 ‘트랜스휴먼’이 등장하는 시대가 있다면, 이런 상황이 일반화된 시대를 포스트휴먼 시대로 말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 2016년 대선 때 인간에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트랜스휴먼당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제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고, 트랜스휴먼을 통한 포스트휴먼 시대에 과연 농업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트랜스휴먼 시대에는 사람과 사물의 경계가 없어진다. 몸 안에 여러 기능의 칩이 이식되고 각종 기구를 활용해 생체 증강이 이뤄진다. 영화 속의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내지 과거 육백만불의 사나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첨단과학 결과물이 여전히 인간 중심으로 등장한다.

유전자조작 작물인 GMO 역시 큰 틀에서 보면 트랜스휴먼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 위주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농작물이라는 생명체에 적용시켰다. 과학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동물에 적용하는 것이 일반 관례라고 볼 때, 조만간 트랜스동물이 나오지 말라는 것도 없다. 그렇게 만든 생체 기능 증강 동물을 어디에 사용하게 될 것인가. 추정컨대 생물무기로 개발, 사용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시대는 사물과 함께 하되, 인간위주의 트랜스휴먼 시대를 넘어 인간과 사물 모두가 생태적으로 동등한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게 첨단 기계나 칩 등의 비율이 계속 커지고 신경망 연결 등으로 기계 의존성은 증대될 것이기에 생체에 대한 사물의 중요성과 비율은 계속 커져간다. 결국 지구상에서 인간은 동물을 포함한 외부 사물과 서로 의존하며 생존을 꾀할 것이다. 농업은 생태 지향적이기에 이와 같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본 사고와 유사하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농업은 생태학과 연계돼야 하며, 이에 종사하는 이들은 생태계의 기본 골격인 상호 연결망 인식에 기반해 주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집단구성원으로서의 적극 연대를 통해 함께 행동하는 이들이 돼야 한다.

가까이 다가온 포스트휴먼 시기에 한국의 농업은 구태의연한 생산 농업 형태로부터 생태 활동과 생태적 가치 실현의 산업 분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트랜스휴먼을 넘어 만물과 함께 소통하고 생성하는 생태적 농업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근대사회를 넘어 점차 등장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더욱 낙오하는 산업이 된다. 미래의 농업은 철저히 생태적 접근을 준비하고 실천해야한다는 논의가 비록 지금은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현실에선 그리 멀지 않았다. 장차 우리의 아들, 딸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를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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