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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 소장수 - ②] 소값 흥정

[한국농정신문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60년대, 남해안의 한 작은 섬의 선착장 앞 바다로 여객선이 들어온다. 접안시설이 신통치 않은 관계로 객선은 바다에 떠 있고, 노를 젓는 종선이 본선까지 다가가서 승객을 받아 싣고 선창에 닿는다. 섬마을에 내리는 사람들 중에 소장수 이도남 일행이 끼여 있다.

“금곡리 우물 옆 뽕나무 집 김 씨네 말여. 그 집에서 소를 내놨다는 소문이 있드라고.”

“그라믄 오늘은 일단 금곡리로 갔다가, 내일 아침에 용출리 마을로 건너가드라고.”

소장수 이도남과 함께 행차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그저 심심풀이 길동무가 아니다. 소장수들 사이에서는 그냥 ‘중개(인)’라고 부르지만, 달리 표현하면 흥정꾼이다.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 금곡리에 도착한 일행은 일단 이장 집으로 찾아든다.

“이 동네 혹시 소 팔겄다고 내논 집 없소?”

마을사정을 탐색하려면 우선 이장 집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안 팔겠다고 손사래를 쳤던 집에서 급전이 필요하다며 갑자기 소를 내놓기도 한다. 대개는 윗녘에 나가있는 자식의 학비조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골탑’이라는 말이 생겼을 터.

드디어 일행은, 소를 팔겠다고 내놓은 최 영감네 사립으로 들어간다. 소장수가 먼저 인사말 삼아 “외양간 조깐 구경합시다!”라고 하면 주인이 외양간으로 가서 소를 끌고 마당으로 나오는 게 관례다. 암소 한 마리를 마당에 세워두고 본격적인 품평이 시작된다.

“어디 관상을 조깐 보끄나. 뿔은 그런대로 잘 생겠고, 발목이 튼튼해야 되는디 영….”

“이만하면 튼튼한 펜이제. 거북이도 볿아 쥑이겄구먼 벌소리 하고 있어.”

“자고로 농우는 허리가 쪽 곧아야 쟁기를 기운차게 잘 끄는 벱인디 너무 살이 쪘어.”

“아니, 시방 뭔 놈의, 유곽에 보낼 기생 뽑는 것이여? 허리가 통통해야 힘을 쓰는 벱이제.”

당시 시골엔 소를 계량할 마땅한 저울이 없었으므로 몸무게는 눈대중으로 어림해 참고사항으로만 삼고, 그 소가 농사일을 하기에 이상이 없는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품질검사의 절차였다. 소의 상품가치가 부피나 중량이 아니라, 그 소가 논밭에서 발휘할 기량의 기대수준으로 결정됐다는 얘기다.

소장수가 말하는 좋은 소는 우선 뿔이 잘 생기고, 허리가 곧고, 발목이 통통하고, 엉덩이는 토실토실하고, 또한 걸음걸이가 당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치아의 상태가 중요하다.

“어디 이빨 조깐 귀경하자. 으음, 날입이로구먼.”

송아지가 1년이 지나면 앞니 두 개를 갈게 되는데 소장수들은 그것을 ‘앞 텄다’라고 말한다. 2년째 되어 이 하나를 또 갈면 ‘날입’이라 하고, 네 개째 이갈이를 하면 ‘집 날입’이라 한다. 또한 ‘수가 걸렸다’라는 말은 소의 성장이 멈췄다는 뜻이다. 이상스럽게 들리는 이러한 은어를 쓰는 것은 소장수들끼리, 혹은 소장수와 흥정꾼 사이에, 소 주인이 모르는 의사소통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 이번엔 걸음 한 번 걸려보드라고. 이랴, 자랴! 워워! 아이고, 이래갖고 쟁기질 하겄어?”

“뭔 소리여? 작년 우리 집 농사를 요놈 갖고 다 짓었는디?”

“쥔네 말만 잘 들으면 되는감? 아무나 부려묵을 수 있어야제. 뿔도 굽었고, 발목도 가늘고, 허리도 뚱뚱하고, 쟁기질도 서툴고…”

소장수가 요모조모로 트집을 잡는다. 왕년의 소장수 이도남 노인은 ‘온갖 흠 다 잡아 싸게 샀다가, 허풍으로 속여 비싸게 팔아먹는 게 소장수 본능’이라고 실토한다.

드디어 소장수는 머릿속으로 적정가격을 어림한 다음, 주인에게 얼마에 팔겠냐고 묻는다.

“못 해도 8만원은 받어야 쓰겄구먼.”

“그런 말씀 마시고, 5만원 받으면 딱 맞겄소. 더는 못 줘.”

바로 그때 흥정꾼이 끼어들어서 요즘 시세가 어떠하며, 엊그제 그만한 소가 얼마에 거래됐다는 등 거간노릇을 한다. 결국 6만5천원에 낙착. 물론 흥정꾼은 뒤에 구전을 받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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