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26] 조금만 먹고 좀 남겨 두거라

  • 입력 2017.05.26 10:17
  • 수정 2017.05.31 17:2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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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친환경 과수농사는 방제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벌레나 균들이 적당히만 먹고 남겨 놓으면 좋으련만 먹었다하면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우거나 나무 전체를 못 쓰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화학농약을 치면 좀 수월하겠지만 친환경 과수농사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그래서 과수재배 농민은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노심초사다.

얼마 전 유기농 사과재배로 유명한 영주의 김동진 농부(소백산 환경농원)께서 양양에 오셔서 농사얘기를 해 주셨는데 지난해 4월부터 9월말 까지 14번 방제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달 평균 2.3회 정도이니 2~3주에 한 번꼴은 유기방제를 실시한 셈이다. 유기농 도사가 이 정도이니 초보 유기농사꾼은 그 횟수가 더 많아야 함은 당연하다.

나의 작은 미니사과 농사(알프스 오토메 200여 그루)도 금년 들어 벌써 6번 방제했다. 1차 방제는(3월 10일) 자닮유황과 자닮오일 30리터, 2차 방제는(3월 24일) 맑은농 보르도액과 자닮오일 35리터, 3차 방제는(3월 28일) 보르도액과 자닮오일 40리터, 4차 방제는(4월 27일) 돼지감자 삶은 물과 자닮오일 50리터, 5차 방제는(5월 5일) 보르도액, 자닮오일, 돼지감자 삶은 물 70리터, 6차 방제는(5월 11일) 보르도액 골드, 자닮오일, 돼지감자 삶은 물 200리터였다. 횟수도 횟수려니와 방제량도 나무가 자라면서 점점 많이 사용된다는 것도 알았다.

나방채집기도 설치하여 매일 저녁에 수십 수백마리의 나방을 포획한다. 웬 나방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나방은 결국 알을 낳게 되고 알은 애벌레가 되어 나무나 나뭇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다. 요 며칠 사이에는 그동안 안보이던 진딧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방제하면 그 해에는 좀 어디가 있다가 내년에 나타나면 좋으련만 두 주가 못되어서 또 나타났으니 방제를 또 해줘야 할 것 같다. 2년차 초보 농부인지라 병충해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거나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늘 어려운 과제이다.

정말 친환경 과수 농사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래서 농민들이 쉽게 친환경 과수농사에 뛰어들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방제에 만전을 기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가을에 수확할 사과 가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봄이 되면 농사는 이미 시작된다. 이른 봄부터 일단 방제는 물론 시비관리와 가지치기 등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말 농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 온몸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병충해를 일으키는 병균들과 벌레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조금만 먹고 좀 남겨 두거라, 너도 살고 나도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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