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이명래 고약 ③] 충정로에 ‘고약 달이는 집’이 있었다

  • 입력 2017.04.15 13:38
  • 수정 2017.04.15 13:4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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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명래에게, 전통 서양의학과 중국의 한방을 접목하여 ‘고약’이라는 종기 치료제를 만들 수 있도록 비법을 알려준 사람은, 한국으로 귀화한 프랑스인 성(成) 신부였다. 충청도 아산의 한 성당에서 그 비법을 전수받은 이명래는, 드디어 직접 고약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프랑스 신부의 성씨를 따서 ‘성 고약’이라 칭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만든 고약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그 약효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임상시험(당시에는 그러한 개념도 없었지만)을 해보자면, 아무래도 성당에 찾아온 소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어림없을 것이었다.

궁리 끝에 그는 자신이 고아 만든 고약을 챙겨들고서 출장을 나섰다. 거지들이 모여 사는 빈민들의 우거지였다.

“다들 시장하지요? 여기 시루떡을 좀 준비해 왔습니다. 자, 이쪽으로 와서 함께 드세요!”

“댁은 뉘신데…”

“종기에 잘 듣는 약을 가져왔어요. 어이구, 이분은 목덜미에 부스럼이 크게 났네요. 이리 와보세요. 내가 약을 좀 발라 줄 테니.”

“난 무르팍에 종기가 났는데…”

“예, 이것이 고약인데요, 아마 요놈을 바르면 고름이 쏙 빠질 겁니다. 그 대신에, 부스럼이 낫든 안 낫든 며칠 뒤에 꼭 이 자리에 다시 와서 나한테 보여줘야 합니다.”

“그야 뭐, 시루떡만 또 갖고 온다면…”

이렇게 청년 이명래는 주로 걸인들을 상대로 ‘성 고약’의 효능에 대한 시험을 계속했다. 물론 임상시험을 해나가면서 고약의 효능을 개선해갔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되자 그 고약의 명성은 충청도뿐 아니라 이웃 전라도 지역에까지 퍼져서, 사방에서 환자들이 몰려왔다. 자연스레 그 고약을 부르는 호칭도 ‘성 고약’에서 ‘이명래 고약’으로 바뀌었다.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명성을 얻은 이명래는 일단 자신이 태어난 서울로 올라가서 중구 중림동에 있는 허름한 집 하나를 얻어 ‘이명래 고약집’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1920년대 중반 어름이었다.

진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왔다.

“아니, 우리는 새벽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왜 안 들여보내주는 거요!”

“우리 선생님은 하루에 환자를 300명만 받습니다. 아까 나눠드린 번호표를 가지고 있다가 차례가 된 사람만 들어오셔야 돼요! 그럼, 76번 환자 들어오세요!”

이명래의 막내딸이었던 이용재 씨의 회고에 의하면 거의 매일 3, 4백 명의 환자들이 새벽부터 몰려왔기 때문에 번호표를 나눠주고 대기하게 한 다음에 진찰을 하고 고약을 팔았다고 한다. ‘이명래 고약집’에서 일하던 거추꾼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진료실에서는 환자를 진료하고, 마당 한 쪽에서는 아궁이를 여기 저기 설치해두고 장작불을 때가면서 약재를 고아서 고약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고약을 만드는 작업도 간단치 않았다. 우선 아궁이에다 함석 세숫대야만한 그릇을 걸어놓고 거기다 면실유 등의 식물성 기름을 부은 다음에 장작불을 땐다. 아궁이가 여럿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떤 약재를 한 번 고았다가 다시 걸러내고, 그 기름 물에다 다른 약재를 넣기도 하고, 또 어떤 약재는 식은 다음에 넣었다가 또 다시 고아야 하는 등, 고약 만드는 일은 그 과정이 매우 복잡했다. 큰 가마솥에다 한꺼번에 고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여러 개의 아궁이마다에 불 때는 사람이 따로따로 붙어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고약을 환부에 붙이자면 유리구슬만한 고약 덩어리를 기름종이에다 손으로 짓이겨서 얇게 늘어뜨려야 하는데 그 작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니까 약재를 고아서 고약을 제조하는 사람들과, 고약덩어리를 기름종이에 으깨 늘어뜨리는 사람, 아궁이에 불 때는 사람, 고약에 들어갈 재료를 조달하러 이리저리 뛰는 사람 등…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끈을 대고 생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이던 1920년대에 서울 충정로에 있었던 ‘이명래 고약집’의 풍경이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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