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이 돼 더 많은 청년들이 귀농했으면…”

충남 논산 협업농장 이동명·김준·권길성씨
행정단위 친환경 교육 인프라 아쉬워 … 사실상 독학으로 기술 배워

  • 입력 2017.03.31 13:41
  • 수정 2017.03.31 13:4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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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형! 딸기밭에 물 줬어?” “응, 줬어!” 권길성(40)씨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도 뭔가 확실치 않은지, 이동명(48)씨는 잠시 딸기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물을 확실히 줬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함께 농사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안 된 티가 났다.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다가도 다시 웃는다. 협업농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농사일이 쉽진 않을 테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을 보면 즐거운 건 확실해 보였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그 옛날 계백의 백제군과 김유신의 신라군이 싸웠던 황산벌이 이곳에 있다. 주변 황토밭에선 흙먼지가 날린다. 대기의 흙먼지도 하우스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딸기향마저 메워버릴 순 없었다. 황산벌 한복판에서 이씨와 권씨, 그리고 김준(45)씨는 친환경농법으로 딸기 협업농사를 짓는다. 이날 자리엔 없었지만 서승광 논산친환경농업인연합회(논산친농연) 회장도 함께 한다.

딸기와 함께 엽채류 농사도 짓는다. 그들이 함께 농사를 시작한 때는 지난해 10월. 아직 6개월도 안 됐다. 이제 한 작기 돌았다. 특히 김준씨는 이번에 협업농을 시작한 게 생애 첫 농사이다.

“원래 김포에 살다가, 캐나다에서 4년간 살았다. 농사는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캐나다의 아름다운 생태환경과 사람들의 삶을 보며 자연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돌아와서 목공예 일을 하다가 이곳 논산까지 왔다.”

 

하지만 결심만으로 모든 게 한방에 풀리진 않는 법. 관련 지식이 없으니 시작할 땐 모든 게 어려웠다. 10년 간 농사를 지은 이동명씨도 1년 전에 모든 농사를 친환경농법으로 전환했다. 그래서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했다.

“친환경농업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청에서 배울 방법이 없어, 사실상 독학했다. 논산에도 농업기술센터가 있지만 이곳의 교육내용은 대부분 관행농 대상 교육이고, 그나마 있는 친환경농업 교육은 농사 매뉴얼만 주고 사실상 끝이다. 주변의 농사짓는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여쭤보고, 책 사서 공부하며 배웠다. 농사짓는 사람들끼린 그런 농사기술은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라서, 찾아가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줬다.”

권씨는 이에 덧붙여 “친환경농업 교육 자체가 척박한 한국 농정에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논산시청엔 최근에야 친환경농산물과가 만들어졌다. 거기 있는 행정직원들의 친환경농업 관련 지식도 전무하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난해 양상추, 케일 등의 엽채류 농사를 처음으로 같이 지었는데, 수급조절에 실패해 잉여농산물이 많이 남게 됐다. 학교급식으로 넘기는 일부 물량 외엔 팔 데가 없었다. 김씨는 “그때 판로를 못 뚫은 배추와 양상추를 김치·샐러드로 만들어 가족들에게 해 먹였다. 그래도 우리가 직접 지은 농산물로 우리 스스로가 득을 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내가 친환경농사 하길 잘 했구나’ 하는 보람을 느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유혹’에 넘어간 적도 있었다. 이씨는 “한두 번 제초제를 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친환경재배가 워낙 어렵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여곡절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긍정적이었다. 그들 모두 “함께 농사짓는 게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최근 무와 당근 농사를 시작했다. 한 하우스에 들어가니, 이제 막 무와 당근 씨앗을 심은 흙이 펼쳐져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무나 당근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그 동안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그들은 무와 당근에 대해 인터넷 검색하고, 책 구입해서 보고, 먼저 이 농사를 지었던 이들에게 직접 방문해 물어본다고 한다. 이토록 농사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김씨의 대답.

“귀농 초년생으로서 나는 협업농장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었단 것 자체가 매우 행운이었다. 그저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함께 농사짓는 동료들은 내가 농사지식이 전혀 없음에도 내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묵살하지 않았다.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었다. 이런 협업농장들이 좋은 본이 돼서 새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기존 농민들과 어우러져 서로 도와가며 산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귀농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모범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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