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의 학교를 지켜주세요

  • 입력 2017.03.26 11:32
  • 수정 2017.03.26 11:44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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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농촌의 학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분교가 없어지고 작은학교끼리의 통폐합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나 농촌에서 학교가 갖는 위상은 결코 작지 않다. 공동화된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중심에 학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횡성의 작은학교를 다니고 있는 최윤이(15, 청일중2)양이 지난 21일 방과후학교가 끝난 뒤 희망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중 집 근처에 다다르자 뒤를 돌아보고 있다. 최양의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9km이다.한승호 기자

강원도 횡성군 청일중학교 앞 체육센터에선 마침 학생들이 피구를 즐기고 있었다. 화요일은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곳을 찾아 함께 방과 후 활동을 하는 날이다. 최윤이(15, 청일중2)양은 단짝 친구와 어깨동무 하다가 팔짱을 끼고 야단이다. 피구도 열심이다. 여중생답지 않은 공의 빠름에 민사고 학생들이 놀란다.

오후 5시, 방과 후 활동이 끝나고 윤이의 하교길을 동행했다. 강원도에서 지원하는 희망버스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속실리집 근처까지 간다고 한다. 버스기사가 이제 오냐고 최양을 반긴다.

도교육청이 작은학교에 지원한 에듀버스도 윤이가 사는 산골마을인 속실리까진 운행하지 못한다. 오전 8시 40분이 등교시간인데도 버스가 마을에 오는 7시 45분에 맞춰 등교하는게 못내 아쉽다.

윤이는 인천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지난해 2학기에 청일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도시학교나 아니면 횡성읍 내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부모님이 말렸는데 제가 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도시학교는 애들이 많으니까 자기들끼리도 친구를 분류해요. 집이 못 살거나 공부를 못하면 왕따를 놓는데 작은학교는 그런 게 없잖아요.”

어린 학생들까지 경쟁에 빠뜨린 어른으로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윤이도 겸연쩍은 듯 “우리 학교는 급식도 맛있고 컴퓨터도 집에 있는 컴퓨터보다 빨라요”하면서 금방 배시시 웃는다. 그러다 “학교가 폐교돼서 다른 학교로 전학가야 한다면 다른 학교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못 다닐 것 같아요”라고 거듭 자기 생각을 말했다.

집까지 바래다주고 헤어지는 길에 윤이는 연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들,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자라는 윤이를 다시 친구도 분류해 사귀는 경쟁의 틈바구니로 몰아넣는 게 맞는걸까.

현재 교육부는 경쟁과 경제의 논리를 앞세워 윤이의 학교를 폐교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청일중학교 학생들도 어렴풋이나마 자기 학교가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인터뷰를 자청한 원정일(16, 청일중3)군은 “선생님들이 사랑도 베풀어주시고 우리들에게 맞춰 쉽게 공부를 가르켜 주세요”라며 후배들도 착하고, 점심시간에 탁구도 하고 자연을 보며 산책도 하고 너무 좋다고 학교자랑을 늘어놨다.

전교생 11명인 작은학교인 청일중학교는 최근 이웃한 갑천중학교와 통합논의가 있었다.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설사 두 학교가 통합했어도 교육부의 통폐합 권고 기준(면 지역 60명 이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두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 지역 아이들의 중학교 진학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뉠 전망이다.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읍내 학교이거나 최근 농촌지역 학교들을 통폐합해 설립하는 기숙형 학교다. 윤이와 정일이가 “네가 다니는 학교는 돈이 많이 들어서 폐교해야 한다”라며 통폐합을 정답이라 강변하는 교육부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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