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는 들녘에서

권오훈 남원농업대학 사무국장

  • 입력 2008.04.14 00:41
  • 기자명 권오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오훈 남원농업대학 사무국장
남원농업대학이란 이름으로 농민들과 함께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농민들의 형편은 여기도 큰 차이가 없다. 연간 소득이 5천만원을 넘는 농가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의욕을 가지고 뭔가 해 보려고 애를 쓰는 농민들일수록 다들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농업의 활로를 찾고자 교육에 임하는 농민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낮 동안의 힘에 겨운 노동을 뒤로 하고 교육장을 찾은 주름진 얼굴들을 대하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도 있다.

작목과 품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농업에 생산성 제고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과수나 원예작물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 우리 농민들의 대부분이 농업에 대한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농사를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원리원칙보다는 잔기술에 관심이 많은 경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더 재배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확인하는 교육과정은 농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농업인 조직화를 거쳐 농산물도 브랜드화를 하라고 유도하지만 품질과 생산성의 상향평준화가 전제되지 않는 브랜드는 유지되기 어렵다. 재배과정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생산하는 농산물의 품질을 고급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정책부서에서는 브랜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농업인 조직화 교육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조직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이 있는 규모로 브랜드를 통합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성원 개개인의 작은 이해관계를 뛰어넘고, 작은 조직들의 조직이기주의를 극복함으로써 큰 조직의 단결력을 높인다는 게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단결하지 못하는 것은 농민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농민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규격화를 하기가 어렵다. 하나 하나의 농산물이 다 다르고, 각 농장마다의 토양과 관리방식에 따라 특성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일년 동안 정성스레 키운 내 농산물이 옆집 농산물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쉬 납득할 농민은 아무도 없다. 판매를 조직하는 것은 운동을 조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조직화를 통하여 단결하고, 나아가 그 조직의 규모를 점점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농민들의 가장 큰 조직은 농협이다. 물론 농협도 각 단위조합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별도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곳도 많다. 그래서 농협이 지역 브랜드의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곳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협은 조합원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의 조직화와 브랜드화를 추진함에 있어 농협을 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개별 농민들이나 작은 규모의 농민조직들에게 유통과 가공의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유통과 가공은 농협이 맡아주어야 한다. 농협을 개혁하고 혁신함으로써 농협이 해야 할 본래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지난 해 가을에는 끝도 없이 비가 내렸다. 복숭아는 당도가 떨어져 값이 형편없었고, 멜론 하우스에는 병이 만연하였다. 일조량이 모자라 파프리카도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겨울 동안의 일조량 부족으로 올해 딸기도 당도가 예년만 못하였고, 추위로 감자 작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딸기와 감자가격이 좋아 힘든 노동을 보상해 준 것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밭에서는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한다. 복숭아나무 밑에서도 냉이와 꽃다지의 희고 노란 꽃이 봄바람에 속삭이듯 살랑대고 있다. 빨강, 노랑, 초록의 탐스러운 파프리카도 주렁주렁 많이 열려 일년내내 하우스 속에서 애쓰는 농민들의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