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서 `경자유전' 빼자? “망국적 발상, 온 국토 투기장화”

국회 헌법개정특위, 농민단체에 ‘경자유전 삭제’ 의견 물어
전농·가농·한농연 등 ‘반대’ … “농지는 농민들의 생산수단”

  • 입력 2017.02.24 18:35
  • 수정 2017.02.24 18:3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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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지전용을 막는 최소한의 버팀목,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이 위태롭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 개헌특위)가 경자유전 원칙을 삭제하자는 여론이 있다며 농민단체들에게 의견을 묻는 등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국회 개헌특위는 지난 10일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 중 ‘경자유전 원칙’에 대해 유관기관·단체의 의견을 심사과정에 참고한다며 전국농민회총연맹과 가톨릭농민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 4-H본부, 한국쌀전업농 등 농민단체에 팩스로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 따르면 개헌특위는 헌법 「제121조 1항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는 조문에 대해 “농촌인구 감소 등 시대상황적 변화를 반영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삭제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회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영호)은 “농지는 농사짓는 농민들이 소유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민들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농촌인구 감소와 경자유전 원칙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국가는 줄어드는 농촌인구 해결을 위해 정책강화와 농지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회신했다. 또 농민들이 농지를 소유하지 않을 경우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될 것이고 농업뿐 아니라 나라의 존폐도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문제점도 적시했다.

가톨릭농민회(회장 정현찬)은 “농지는 식량자급의 핵심요소 중 하나이므로 경지면적이 지속 감소하고 식량자급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지켜야 하는 것이 시대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경자유전 원칙을 삭제할 것이 아니라 비농가 소유 농지는 국유화 하는 등 경자유전이 더 강화되도록 헌법 개정이 검토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49년 「농지개혁법」 제정과 이후 1950년 농지개혁이 경자유전을 실현한 최초의 사례이다. 당시 조봉암 농림부장관이 경자유전에 입각한 농지개혁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자본가들이 소유하던 3ha 초과 농지를 국가가 매수해 소작농에게 분배했고, 이후 전체 농지의 95.5%가 자작농으로 전환됐으며 농업생산성은 3배 늘어났다는 조사도 나온 바 있다.

헌법 조문에 ‘경자유전’이 명시된 것은 1987년 제9차 헌법에서다.

하지만 경자유전 원칙이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헌법에서는 엄격한 경자유전을 말하고 농지 소작제를 금하고 있지만, 1994년 「농지법」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이유로 비농민의 농지소유를 허용하고 임차농에 대한 보호조항이 담겼다. 실제 2015년 기준 농지 소유자와 실경작자가 다른 농지는 전체의 50.8%에 달한다. 통계청 조사결과 2015년 임차농가 비율은 전체 60%를 차지한다. 농민 절반 이상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도 비싼 임차료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은 “1차 산업인 농업과 농민을 경제적 관점에서 홀대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농지가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것을 헌법개정으로 방조한다는 것은 농업농민을 부정하는 일을 자행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은퇴 후 농사를 짓는 경제학자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망국적 발상이다”고 일침을 놨다. 윤 명예교수는 “헌법에서 마저 경자유전을 뺀다면 농민과 농촌은 사라지고 온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뿐 아니라 빈부격차를 극대화 시키는 일만 남는다.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아무리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난무하는 시대라지만, 최소한의 원칙과 철학, 정의, 부끄러움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한심한 작태를 걷어치워야 한다”고 개탄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본지에 매월 기고하는 <농사직썰>(2016년 8월 8일자)에서 농림부 장관시절을 회고해 “재계와 정부 관료,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 학계, 일반사회 등 웬 놈의 땅 욕심이 그렇게나 공고하게 뿌리박혀 있는지 농림직은 그들의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편할 날이 없다. 그 중 단골요구는 용도변경을 허하라, 소유규모 상한제를 폐하고 임대차(소작)를 자유화 하라, 등등 공적 사적 유혹과 압력이 끊이지 않는다”고 실태를 고발하면서 “권력부유층의 농지투기와 소작제가 되살아나고 있다”며 우려했다.

김 전 장관은 “제2의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또는 정치가로 위장해 나라를 절단내려 한다. 헌법에서 경자유전을 빼라는 목소리는 바로 그런 현상이다”면서 “예로부터 토지제도가 문란해지면 그 국가는 망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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