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겨울전정 이야기

  • 입력 2017.02.19 11:21
  • 수정 2017.02.20 11:52
  • 기자명 이영수(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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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경북 영천)]

이영수(경북 영천)

내가 사는 경북 영천 임고면은 강수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해 전국 최대 복숭아 생산지다. 과수 농가들은 전정작업으로 겨울에 쉴 틈이 없다. 흔히 가지치기라 일컫는 전정작업은 엄밀히 말하면 가지를 자르는 전지와 가지를 유인하는 정지 작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과수농가에게 겨울전정은 한 해 농사가 달렸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예전부터 전정을 하는 전지꾼들은 상기술자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자기 밭에 전정 순서가 돌아오면 밭주인들은 전지꾼들이 머무를 사랑방을 내주고 웃풍 있는 방이 후끈후끈할 정도로 불을 넣었다. 전지꾼들에게 주는 새참과 밥은 최고였다. 밭주인은 전지꾼들에게 매일 담배 한 갑씩 주머니에 넣어주고는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좀 더 신경써서 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전정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웬만한 거리는 차로 이동하니 사랑방 거처는 옛말이 되었고 밥도 식당에 가서 먹는다. 밭주인들도 그냥 주인 없이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 왕년에 톱 한 자루 가위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전정사들도 한 분 두 분 졸업하고 대신 수백만원짜리 전동가위로 장착한 젊은 농사꾼들이 대체하고 있다.

귀농 첫 해 내가 처음 전정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설픈 신참이니 만만한 회원밭에 가서 연습 삼아 매실을 잘랐다. 처음 몇 시간은 긴장도 되고 재미나더니만 컴퓨터만 두드리던 근육에 무리가 오는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가위질 한 번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를 데리고 간 농민회 회장님이 내 몫까지 두 배로 일하느라 날랜 범처럼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이렇게 해서 농사지을 수 있겠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저녁에 집에 와서 밥술을 뜨는데 팔이 하도 흔들려 젓가락질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안 그래도 농사지으러 온 아들에 화가나 날마다 불호령을 내리시던 아부지가 눈치 챌까봐 팔뚝을 몸통에 딱 붙여서 노심초사하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호랑이 같던 아버지는 고인이 되셨고 우리 밭은 복숭아 농가들의 교육장이 될 만큼 자리 잡았다. 내가 주도해 귀농한 선후배들과 전정팀도 꾸리고 겨우내 전정하러 다니며 농사이야기 세상이야기 나누며 재미나게 겨울을 보내고 있다. 복숭아 전정의 원리는 간단하다. 나무의 세력을 판단해 센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세게 만들어 준다. 지상부의 가지들이 뿌리의 양분을 조화롭게 잘 빨아 먹을 수 있도록 질서 있게 하고, 또 잎과 열매가 광합성을 잘하고 공기와 약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한다.

이를 위해 세력이 약한 나무는 전정량을 늘리고 양분을 보충해 주고 세력이 강한 나무는 손을 덜 대고 굶긴다. 또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이 특정 가지에 일방적으로 몰려 다른 가지들이 양분부족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슷한 환경 즉 결과지의 위치와 굵기를 비슷하게 만들어 준다. 또 혼자 우뚝 솟아 햇빛과 양분을 독차지해 다른 가지에게 그늘을 지우고 통풍을 방해하는 가지를 잘라준다.

전정 순서도 있다. 큰 가지부터 자른 후 작은 가지를 자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밖에서부터 안으로 전정을 해야 바른 전정이 되고 효율적인 전정이 된다. 큰 가지를 자르는 게 어렵다고 우선 쉽게 판단하고 자를 수 있는 가지부터 자르면 골격도 안 잡히고 세력균형도 못 이루어 결과적으로는 나무는 제 멋대로 자라고 품질에도 편차가 커 좋은 과일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디더라도 체계를 바로 세우고 양분을 홀로 먹으려는 세력을 과감히 제거해 조화를 이루게 해야 된다는 점에서 전정은 우리네 삶과 참 많이 닮았다. 나도 내 인생의 키울 가지, 자를 가지, 눕힐 가지를 구분해서 인생전정을 멋지게 해 잘 익은 복숭아처럼 향기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고향마을인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 자리 잡은 이영수(44)씨는 귀농 10년차 농부다. 복숭아 살구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업문제와 지역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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