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아따 성님 그래도 노제는 지내야지요?”

  • 입력 2017.02.12 01:06
  • 수정 2017.02.12 02:01
  • 기자명 방극완(전북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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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방극완(전북 남원)]

방극완(전북 남원)

“정초부터 어떻게 노제를 지낸디야.”

설 명절을 얼마 안남기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발인이 설 당일이라 마을에서 말들이 많다. 노제를 지내자는 분들과 정초부터 어떻게 노제를 지내냐는 분들로 오랜만에 마을에 토론이 붙었다.

“명절에 돌아가시지 말라는 법도 없고 여기 계신 분들도 돌아가시고 나서 이런일로 이야기하면 안 서운하겄소.” 결정타였다.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결국 노제는 지내되 마을 안쪽으로 운구차가 오지 말고 돌아서 장지로 가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집성촌이다보니 큰집 며느리가 돌아가신 일이라 쉽게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나름 절충안이 통과된 것이다.

산일을 해야 될 사람이 없어서 장례식장에서 하루만 있고 새벽에 장지로 내려와서 명절 전날이지만 와비를 맞추고 일할분들을 찾았다. 산일하는 걸 도와만 줘봤지 맡아서 해보기는 처음이라 걱정이었지만 동네 어른들이 오셔서 묘자리부터 떼(잔디) 입히는 방법까지 알려주시고는 함께 거들어 주었다.

“노제는 지내고 마을 바깥쪽으로 운구차 돌아서 오면 됩니다.”

“명절날 어떻게 노제를 지내냐. 그냥 장지로 바로 가자. 장지가 바로 집옆인데 마을분들은 거기서 함께 하자고 이야기해봐라.”

장례식장에 있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결정한 내용이란다.

“어쩌겄냐. 유족이 우선이지.”

열띤 토론을 마치고 마을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만 유족들의 이야기가 이렇다고 하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유족이 우선이라고.

설 당일이지만 마을분들이 많이도 오셨다. 함께 장례를 치르고 부족한 음식이지만 함께 나눠 먹고는 그렇게 장례는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묘비 뒤쪽에 자손들을 적는 순서가 문제가 되었다.

“큰집에서 비를 이렇게 쓰면 어찌 하냐?”

아들들을 먼저 적고 딸들을 적어야 하는데 일부러 서열 순으로 적었다. 그러다 보니 큰고모가 비 제일 위쪽에 자리하게 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적어야 자손들이 누가 손위고 아래인지 한번에 알지 않겠습니까?”

“듣고보니 틀린말은 아닌디 그래도….”

또 즐거운 토론이다. 어려운 결정을 할때면 마을에선 제일 큰 어르신의 의견이 중요했고 집안에선 장손 의견이 거의 모든 걸 결정했었다. 사정상 아버지가 이번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장손이 없다보니 모든 것이 토론이 되고 함께 결정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서열 순으로 적어둬야 자손들이 보고 한번에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비를 만들어준 사장님도 정말 이렇게 적어도 되겠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굳이 토론을 하지 않아도 늘 그렇게 해왔던 일이었다. 딸은 출가외인이니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딸도 자식아닌가. “비록 지금은 논쟁이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 모든 비는 이렇게 서열 순으로 적을라고요.”

명절에 치러진 장례에 많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문화들과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법이고 그렇게 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이유가 궁금해서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아직 모르시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웃으시며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오늘도 명절이라 장례식에 못가서 미안하다는 친구놈 전화에 “오는 놈이 이상한거야. 다같이 힘든 명절보냈잖아. 고맙다.”

“아따 성님 그래도 노제는 지내야지요?”

농민칼럼 다섯번째 필자 방극완씨는 전북 남원에서 복숭아 농사 5천평, 논농사 30마지기를 짓고 아들딸 자식농사도 열심히 짓는다고 소개한다. ‘제대로' 농사지은 건 5년 됐다는 30대 농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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