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9] 봄꿈, 개꿈

  • 입력 2017.02.10 10:12
  • 수정 2017.05.26 10:1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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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미니사과(일프스 오토메) 묘목 211그루와 히카마(멕시코 감자)를 주작목으로 농사를 지었다. 귀농 첫 해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잘 보낸 것 같다. 미니사과 묘목도 잘 자라고 있고 히카마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일을 많이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친환경 농업을 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농장을 어떻게 조성하고 가꿔 나갈 것이며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농장이 돼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1년간의 짧은 농사 경험이지만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농장을 조성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사와 삶의 철학이 있는 농장으로 가꾸고 싶다.

이제 귀농 2년차의 2월 중순이다. 금년에는 뭔가 소득도 좀 올리면서 장기적으로는 소규모 농장을 어떻게 생태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가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계절이다. 소위 농장 및 영농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기가 됐다.

꽃나무, 단풍나무도 심고 싶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꽃을 피우는 화초류도 심고 싶다. 손주들과 지인들이 방문하면 따 먹을 수 있게 감, 사과, 배와 같은 각종 과일나무도 몇 그루씩 심고 싶고, 상추, 고추, 가지, 호박, 옥수수 등도 조금씩 심어 직접 따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한번 심으면 매년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머위, 도라지, 더덕, 산마늘, 곰취, 방풍, 곤드레 등 산나물도 심고 싶다.

태양광 시설도 해 에너지도 자급하고, 생태뒷간도 만들고 싶고, 넓지 않은 농장이지만 좁고 짧은 오솔길도 만들고 작은 의자도 군데 군데 놓아 자연과 벗하며 대화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휴식공간이 될 수 있도록 꾸미고 싶다. 벌통도 몇 통 가져다 놓고 싶다.

무엇보다 삶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다. 최소한의 에너지와 물질을 소비하며 살고 싶고 검소하고 욕심없는 삶을 살고 싶다. 구린내 나는 세상의 정욕이나 명예욕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 여름에는 왕성한 광합성과 푸르름으로 나무를 살려내다가 가을이 되면 또 그 나무를 살려내기 위해 낙엽이 돼 땅에 떨어져 결국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나뭇잎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변함없이 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나뭇잎의 절개를 배우고 싶다.

이 작은 농장에서 이러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다. 봄꿈은 개꿈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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