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극장 ⑤ - 영사실에서 생긴 일

  • 입력 2017.01.20 11:24
  • 수정 2017.01.20 11:3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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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옛 시절의 시골극장에는 두 대의 영사기가 있었다. 한 쪽 영사기로 상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쪽 영사기에는 후속 필름을 걸어놓고 대기하고 있다가, 필름의 마지막 바퀴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재빨리 돌려주어야 했다. 1950년대에는 영화 한 편을 상영하자면 12개의 필름을 이어서 돌려야 했다. 영사실 사람들에게 가장 진땀나는 때는 도중에 필름이 끊어져버리는 경우다. 시골극장까지 내려오는 동안 영화필름이 멀쩡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입장료 내놔!”

나이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 시절 정전이 된 객석에 앉아서 이런 소리 한 번쯤 질러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휘파람을 불었든지.

도중에 필름이 끊기면 영사실은 비상이 걸린다.

“가위 어딨어! 식초 가져와!”

엉뚱하게 웬 식초냐, 하겠지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끊어진 필름의 양쪽 끝을 칼이나 가위로 긁어서 투명하게 만든 다음, 그 자리에 식초를 바르면 필름이 눅눅하게 녹는다. 그 때 재빨리 이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끊어진 필름을 한 번 이어붙이기를 할 때마다 보통은 1미터 가량이 잘려나간다. 필름은 다시 돌아가는데, 객석 여기저기서 “에이!”하는 불평이 쏟아진다.

공교롭게도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하려는 순간이나,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권총을 빼든 순간에 하필 필름이 끊어져 버리는 수가 있었다. 다시 이어서 돌리면 이야기는 저만치 건너뛰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필름이 끊어졌을 때 영사기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4천 와트에 달하는 탄소봉의 불빛을 차단하는 조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탄소봉으로 일으킨 불빛을 반사경을 통해 필름에 투시하는 방식으로 상영을 했는데, 필름이 멈춘 상태에서 그 불빛을 쏘아 보내면 필름이 타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엄청나게 밝은 불빛이 관객들에게 쏟아지게 되면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내가 군산 국도극장의 고황삼 영사기사를 만났을 때, 그는 영사실 근무 경력만 40년이라 했는데, 팔목 여기저기에 불에 덴 흉터가 남아 있었다. 탄소봉의 불빛이 관객들에게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선 손등으로 빛을 가려야 했던 것이다.

그처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사 기사들의 대우 역시 보잘 것이 없었다. 예전 시골극장의 경우 하루에 2회 상영을 하거나, 그마저 손님이 뜸하면 오전 상영은 생략하고 저녁에 한 번만 상영을 했다. 근무 시간이 하루에 네 시간, 어떤 때는 두 시간에 불과한 실정이었으니 월급을 넉넉하게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사실 사람들에게 월급보다 더 짭짤한 부수입이 있었다. 육칠십년 대에 시골 극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상영되던 광고화면을 구경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서울에 있는 큰 기업체들의 광고도 끼여 있었는데, 그런 광고는 극장 측에서 광고비를 받았지만, 시골 읍내에서 들어온 광고물에 대한 수익금은 관행상 영사실 직원들 차지였다.

-시장입구 삼거리, 제일시계점! 예물시계와 금은보석은 시장입구 삼거리에 있는 제일시계점으로!

-신사복 만들기 30년, 신사 정장은 ‘성도라사’로 오세요. 농협 앞 황금다방 옆에 자리한 신사복의 전당, 성도라사!

읍내에서 들어온 광고는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는 영화 시작하기 전에 돌리는 광고가, 서울에서 내려온 것까지 합치면 이삼십 개씩이나 됐어요. 영사실 수입이 짭짤했지요.”

왕년의 영사기사 고황삼씨의 회고다. 광고 한 편을 한 달 동안 방영해 주고서 받는 요금은 극장입장료의 30배였다. 극장 입장료가 100원 일 때 매월 3천원의 광고료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 외에도 극장에는 간판을 그리는 미술부 직원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간판을 실감나게 그려서 내걸지 않으면 극장의 수익에 막대한 차질이 있었다.

“앗다, 신성일이를 꼭 오지명이 맹킬로 그려놨네, 쯧쯧.”

이런 평을 받는다면 미술부에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아무리 시골극장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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