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농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농정개혁 /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 입력 2016.12.31 18:36
  • 수정 2016.12.31 19:42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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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1995년 WTO체제가 출범한 이후 20년 동안 우리나라 농정의 패러다임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모화, 전업농화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성장동력산업으로서 농업이 강조되는 등 농업을 산업적 가치로만 인식한 것이다. 이마저도 정부가 슬그머니 접었지만 지난 20여년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되뇌었던 ‘논농업 6ha 7만호 육성’이 그 대표적인 정책이다. 밭농업을 비롯한 중소 가족농 육성은 주변 정책으로 전락했다. 농민에게는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 유통 판매 관광 등 전 분야에서의 만능자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엘리트 농민만을 위한 수출농업, 벤처농업, 6차산업화니 강소농 정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엘리트’ 농민 육성, 농촌경제지표만 떨궈

이러한 농정 패러다임으로 2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농업은 산업으로서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1등 하는 경쟁력 높은 농민은 몇 퍼센트나 되었는가, 농민들의 소득은 얼마나 증대됐고 안정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농촌지역 공동체는 유지 보전되고 있는가,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는 증대되고 온 국민들과 공감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난 20여년 동안 농촌경제사회 지표를 보면 자명하다. 수입농산물의 범람은 농가경제의 악화로 드러났다. 호당 농가소득은 20년 전에는 도시근로자소득의 95% 수준이었으나 2015년에는 63% 수준으로 떨어졌고, 농업소득은 무려 20년 동안 명목가격으로도 1,046만원에서 1,125만원으로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러나 농가부채는 1995년 916만원에서 2015년 2,721만원으로 약 3배 이상 늘어났다. 1등 하는 농민은 전체 농민의 1%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농촌지역 공동화의 심화는 국가균형발전에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 할 것이 뻔하다. 농촌의 인구 과소화와 노령화 현상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은 13.1%이지만 시군 기초 지자체 228개 중 77개 지자체는 이미 34.2%에 달하고 있어 머지않아 소멸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농촌 지역 공동체가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루 빨리 농업·농촌의 미래비전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농정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농업·농촌의 미래는 암담하다.

농정 재설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먼저 한국 농업의 미래 비전은 ‘안전한 국민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농업’이어야 한다. 쌀, 밀, 콩, 옥수수, 보리 등 기초식량을 안보적 차원에서 최대한 유지하는 농업이어야 한다. 특히 주식인 쌀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역사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 가치와 철학, 그리고 삶의 모습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쌀 생산기반의 안정적 유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쌀 소비 감소로 인한 공급 과잉은 타 곡물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적극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쌀 생산감축보조정책(Blue Box) 도입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다음으로는 중소 가족농 뿐만 아니라 모든 농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인간으로서의 적절한 복리수준과 삶의 행복권이 보장돼야 한다. 1등 하는 농민보다는 농사일을 하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삶의 여유와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농민이 많은 농촌 공동체로 바꿔나가야 한다. 동시에 안전한 농식품과 자연 및 환경을 살리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명목으로 직불제도와 보조정책을 확대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농촌에 거주하는 모든 농민을 대상으로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농촌거주직불제(안)’ 같은 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추가적인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다면 현재 직불금 1조5,000억원과 각종 보조금 6조5,000억원 등 약 8조원의 예산 중에 일단 2조원을 농촌거주직불제로 전환하면 호당 평균 월 20만원씩 지불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엄격한 농민자격과 의무조건을 수행해야 한다. 하루 빨리 시행해 보고 점차 확대할 필요가 있다. 농촌거주직불금(안)은 현금으로 매월 지급하기 때문에 농민이 느끼는 만족감은 훨씬 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거두 카너먼에 의하면 현금 수입(이익)이 생겼을 경우 소비자는 2.7배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20만원의 추가적인 수입이 생기면 농민들의 만족감은 54만원을 받은 것만큼의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정책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농정의 중심축을 중앙에서 지역으로 넘기고 중앙은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농가소득 보장, 대외협상, 전체적인 기획과 감사 등의 기능을 강화하고 구체적인 농정은 지자체에서 지역 실정에 맞게 주어진 예산안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역차원에서 최근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로컬푸드운동, 친환경 학교급식운동, 토종종자보급운동, 어메니티 자원의 활용, 귀농·귀촌, 생협운동, 착한소비운동,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생태농업 등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의 개발에 혼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새해 우리는 새시대를 일궈야 하는 시간을 맞닥뜨리고 있다. 농업·농촌·농민을 살려 전 국가가 살 것인지, 개방농정의 찌끄러기를 끌어안고 있다 농업·농촌·농민은 물론 국민 먹거리 침몰시대를 맞을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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