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새해] 설을 기다리는 곶감

1년을 머금은 달콤함, 경북 상주 그루터기공동체

  • 입력 2016.12.31 10:27
  • 수정 2016.12.31 14:22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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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경북 상주에서 곶감을 생산하는 그루터기공동체 소속 농민들이 가격 부담 없이 맛 볼 수 있는 곶감을 봉지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공기알 집듯이 하면 되겠다. 10번만 집으면 50개네.” 경북 상주시 신봉동 429번지의 곶감 작업장에 들어서자 달곰한 향이 코를 반겼다. 인터뷰를 약속했던 이혁(45)씨는 반건조 곶감 소포장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물세트의 곶감 보다는 작은, 재래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크기였다. 곶감을 맛보라 권하기에 뭔가 보탬은 돼야할 것 같아서 포장작업을 도왔다. ‘상주곶감’ 글씨가 적힌 지퍼백에 곶감 50개를 담는 작업이었는데, 농민들에게 이 정도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 수준이라 했다. “이렇게 포장해서 2만원이에요. 싸고 양이 많으니 주부들한테 인기가 아주 좋아서 금방 동나요.”

상주에는 농한기가 없다. 봄, 여름에는 감, 포도, 사과 등 과일을 키우고 과일을 수확하면 곧바로 곶감을 만드는 일이 시작된다. 그루터기공동체의 농가들은 비교적 생산량이 적은 편이라 10월 23일경 곶감을 시작했고, 대규모로 곶감을 하는 농가들은 보통 그보다 일주일 먼저 일을 시작한다. 그루터기공동체에는 8농가가 함께하고 있는데, 38살부터 최고령이 50대 초반인 ‘젊은 조직’이다. 농민회 핵심활동가이기도 한 그들은 생활, 투쟁, 농사를 함께 하자는 뜻에서 공동작업, 공동생산, 공동분배 형식의 공동체를 의기투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씨는 “조합에 맞는 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아직 생협에 판매하는 과정에 있다”면서도 “물가가 오르거나 생산량이 줄어도 곶감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며 공동체로서의 자부심을 보였다.

감부터 곶감까지 1년을 꽉 채우는 농사지만, 외벌이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벅차다. 갈수록 떨어지기만 하는 감과 곶감 가격 때문이다. 4~5년 전 7만~8만원하던 생감 20kg박스는 요즘엔 3만원만 받아도 ‘좋은 값’이라 한다. 10kg에 최고 17만원을 호가하던 곶감은 현재 10만원 아래로 가격이 형성된다. 곶감 생산농가들이 규모화 되고, 전국적으로 생산되는데다가 수입산까지 늘고 있어서다. 이 씨는 “이제 대형농가한테 밀리고 돈벌이도 잘 안되니 사양업이 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최상급 곶감으로 선물세트를 만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제 설이 가까워오면 그루터기 농민들은 직접 선물세트를 만들고 택배박스도 포장해야 한다. 겨울에는 8시 반에 ‘출근’해 5시 반에 ‘퇴근’하지만 설 즈음엔 9시까지 연장근무다. 바쁘게 설을 보내고 나면 다시 과일농사가 그들의 눈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해도 그치지 않던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던 곶감, 모진 한 해를 지나온 우리에게 달콤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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