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누에치기 ②] 온 마을 농토가 뽕밭으로 변했다

  • 입력 2016.12.02 14:06
  • 수정 2016.12.02 14:0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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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아, 아, 주민 여러분들께 알려 드리겠심더. 오늘, 우리 마을이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안건을 가지고 회의를 열라고 하이깨네, 집안의 호주 되시는 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퍼뜩 마을회관으로 나와 주이소.”

1965년 겨울 어느 날, 경상북도 상주군 낙동면 상촌리의 동네 스피커로 마을이장 김병도 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촌리는 120여 호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이었다. 호주들이 영문 모르고 회관으로 모여 들었다.

“지가 오늘 멘사무소에 갔다가, 우리 동네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억수로 중요한 소식을 갖고 왔심더. 예로부터 우리 상주는 쌀하고, 목화하고, 또 누에고치가 많이 난다캐서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안 캤심니꺼. 그러이깨네…”

이장이 내놓은 소득증대 방안이란 다름 아닌 양잠이었다. 누에를 치자는 것인데, 그것도 심심풀이로 부업삼아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지어오던 밭농사를 작파하고 모든 밭에다 뽕나무를 심어서 단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당장에 “누구를 굶겨 쥑일라카나?” “누에는 아무나 치나!”, “치아라 마!” 따위의 거친 반응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김병도 이장의 권유도 집요했다.

“걱정 마이소. 아무 대책도 없이 누에를 치자고 하겠심니꺼.”

이장의 입에서 이런저런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에서 ‘잠업증산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 가지고 누에를 치는 농가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 했다. 뽕나무 묘목도 무상으로 주고 잠종, 즉 누에씨도 공짜로 주고 기술지원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판로 역시 정부에서 주선을 해서, 전량 일본으로 수출을 하기로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뽕나무 조성단지가 10정보 이상이 되어야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자면 상촌리 마을의 밭 전체를 뽕밭으로 만들어야 했다. 주민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졌다.

“묘목을 심어서 뽕을 딸라카모 3년이나 걸린다 캤는데 그 3년 동안 뭘 묵고 사노?”

“그것도 걱정 마이소.”

일단 단지가 조성되면 누에 소득이 생길 때까지 3년 동안, 구호물자로 보관해둔 밀가루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이 돼 있다고 했다.

양잠업은 일제가 자신들의 주요산업인 제사업(製絲業)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조선농민들을 통제하여 대대적으로 육성하였기 때문에 일제강점 시절에는 매우 번성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상촌리 주민들이 마을회의를 했던 1960년대 중반에, 정부가 외화획득의 일환으로 양잠업 증산 캠페인을 벌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으므로, 김병도는 혼자서라도 양잠업을 시도해 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아버지와 아내 등 가족들을 어렵게 설득하여 우선 밭 6백 평에 뽕나무를 심었다. 1미터 간격으로 줄을 치고, 70센티미터 간격으로 묘목을 심었다. 그것만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논 2천 평을 팔아서 그 돈으로 밭을 사서 보탰다.

처음에 주춤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김병도를 따랐다. 명색 이장이라는 사람이 전답을 모두 투자하여 뽕나무밭을 조성한 것을 보니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드디어 마을 주민 모두가 양잠업을 가업으로 삼았다. 온 마을 밭이 모두 뽕밭이 되었다. 글자 그대로 그 동네에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출렁이게 된 것이다.

닭이나 오리처럼 누에도 알을 낳는다. 그 알을 받아서 농가에 공급하는 곳이 잠종조합이다. 초기에는, 조합에서 유리판에 받은 누에알을 종이에 옮겨 붙여서 농가에 공급하면 양잠농가에서 그것을 받아 알을 부화시키는 방식으로 누에종자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잠종조합의 사육장에서 아예 알을 부화시켜서 일정 크기로 키운 다음, 그 어린누에를 농가에 공급했다. 1967년 겨울, 양잠 기술을 지도하러 나온 사람이 동네사람을 다시 불러 모았다.

“드디어 내년 봄에는 뽕밭에서 뽕을 따다가 본격적으로 누에를 쳐야 할 것이니까 자, 모두들 집집마다 잠실을 지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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