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화전민 ②] 유랑 화전민 이야기

  • 입력 2016.11.04 14:13
  • 수정 2016.11.04 14:1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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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은 계방산, 오대산, 두로봉, 가칠봉 등의 험준한 산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산악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옛적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자운리라는 마을은, 나사못 같은 산길을 굽이굽이 한참을 감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산골 오지의 비탈동네다. 내가 화전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갔던 때가 2001년 봄이었다. 4월 중순이었음에도 길바닥에 얼음이 서걱서걱 밟혔다. 어떻게 해서 그 곳에 화전민 집단부락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살펴보겠거니와, 지금부터는 1960년부터 10여 년 동안 순전히 화전으로 생계를 꾸렸다는 이정식 노인의 경험을 더듬어보기로 한다.

1960년 봄, 이정식이 3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명받았습니다!”라고 신고를 했던 곳은, 친형인 이태식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홍천군 남면의 원천리라는 산골마을이었다. 형제의 고향은 강원도가 아니라 경상도 양산이었다. 하사관으로 장기복무를 했던 형 이태식은 제대하자마자 군 생활 기간에 모아둔 30만원으로 부대인근의 밭 5천 평을 사들였다. 한 마지기를 2백 평으로 계산하면 스물다섯 마지기나 되는 셈이니, 산간마을 주민 치고는 빈농은 아니었다. 물론 그 밭이 온전한 토양의 농지라면.

고향에 가봤자 변변한 땅뙈기가 없는 터에, 차라리 형네 집에서 농사나 거들자 해서 그곳에 눌러 살 결심을 했다는데, 그러나 이튿날 형을 따라서 밭갈이를 하러 나갔던 이정식은 낙심천만이었다.

“누군가 화전답으로 일궈서 이미 농사를 두어 번 지어먹은 땅이었어요. 단물 다 빼먹고 난 자갈밭을 산 것이지요. 옥수수와 감자를 파종하려고 괭이로 고랑을 쳐봤는데 괭잇날에 흙이 걸려야 말이지. 하긴 그런 땅이 아니라면 30만원에 5천 평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그러나 알곡이 열리든 쭉정이가 열리든, 봄철 파종기에 놀고 있을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땅을 파서 옥수수 씨앗을 뿌리기로 했다. 대개의 화전이 그러하듯 그곳도 40여 도나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 날, 형인 이태식은 밭 위쪽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었는데 쟁깃날에 걸린 꽤 큰 덩어리의 호박돌 하나가 아래로 굴러서, 하필이면 밭 가장자리쯤에 놓아둔 양은그릇을 건드렸다.

“어어? 저 양재기에 점심 때 먹을 밥하고 찐 감자…”

이태식이 쟁기를 세워두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이미 그 양재기는, 찐 감자와 보리밥과 김치 따위를 바닥에 쏟아놓고 저만치 아래로 굴러 내리고 있었다. 동생 이정식은 반사적으로 고놈을 뒤쫓았다. 때마침 바람까지 불었다. 가속도가 붙은 그 빈 양재기는 경사진 돌밭을 통통, 퉁기면서 잘도 굴렀고 이정식도 고놈을 잡겠다고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함께 굴렀다. 밭 아래 개골창으로 굴러 떨어진 양은그릇을 겨우 주워들고서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시 밭으로 올라서노라니 눈물이 핑 돌더라 했다.

‘그래도 밥그릇인데 내버릴 수는 없지. 아이고, 다른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고, 삼시세끼 밥 좀 먹고 살자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네.’

산간마을 주민들 중에서 농토가 적어 생계를 잇기 어려운 사람들은, 호구지책으로 국유림에 몰래 들어가 화전을 일구기도 했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몰래 산속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화전농을 하기도 했다. 군청 산림계 직원의 눈을 피해 산중으로 들어가서 화전을 일구는 경우, 보통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불을 피워서 초목을 태웠다. 그럼에도 불길이 번져서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정식 노인은, 불을 기술적으로 잘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길이 바깥으로 번지지 않도록, 밭으로 일굴 터 둘레를 일단 파서 고랑을 만든 다음에, 불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타내려가게 지르거든. 바람 없는 날을 잡아서.”

어느 날 외지에서 온 떠돌이 화전민 박 씨가 이정식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저 아랫녘 지리산에 갔더니, 산속 깊은 곳에다 화전을 만들고서, 그거 있잖아, 그거…그걸 재배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니까. 안 들키고 잘만 하면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어. 자네 나랑 같이 한 번 해볼 텐가?”

이정식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더러는 화전에다 몰래 아편을 재배했다가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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