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너희가 죽였고 또 죽이고 있다

  • 입력 2016.10.02 12:38
  • 수정 2016.10.02 12:42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직접 농업을 챙기겠다고, 쌀값 21만원 보장한다고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되고는 TPP하겠다고 그나마 간신히 버티는 농업을 온전히 망하게 하려고 온갖 미사여구를 남발했다. 과로로 쓰러져가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온통 경제대박을 외치면서 큰소리를 쳐댔다. 전국민이 세월호 아픔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는 사이 WTO에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쌀시장 개방되어도 농민들 살 길 만들어준다고 발표한 ‘쌀산업육성대책’은 10년 전 쌀협상 때 내놓은 대책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도 무슨 쌀을 살릴 비책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다.

기능성 쌀 종자를 개발해 벼농가에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한다는 짓이 호남평야 한 가운데로 옮긴 농촌진흥청에 유전자조작벼 시험재배장을 만들어놓고도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몇 차례나 밥쌀을 수입했다.

약속했던 21만원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3분의 1로 떨어진 쌀값으로 한가위를 맞았다. 농민들은 결국 피같고 살같은 황금빛 논을 갈아엎었다. 농촌에서 천원 남짓에 판 배추는 소비자 손에 만원에 팔렸다. 한가위 물가는 쌀을 빼고는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 사이 나라가 해주지 않는 것 대신 지방정부에서 하겠다고 ‘농산물 최저가격보장 조례’를 제정하려고 하니 중앙에서 지방에 주는 정부보조금을 끊겠다고 협박을 했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땅에 한마디 사전 이야기도 없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사드배치를 발표했다. 반발이 심해지니 이곳저곳 인근농촌을 슬쩍 건드려보고 그것도 안되니 막무가내로 발표를 강행하려고 한다.

농식품부 장관이라고 지명된 작자들은 하나같이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공금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 바빴던 자들이었다. 급기야 이번에는 농식품부 장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국회에서 말했건만 대통령은 멀리 외국에서 전자결재로 장관자리에 앉혔다. 국회가 모처럼 장관 해임안을 결의하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당대표는 국정감사를 보이콧하고 무기한 단식을 한다고 난리도 아니다.

지난 4년 우리나라에서 농업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들을 크게 생각나는 것만 적어봤다. 적다보니 숨이 막힌다. 지난 4년 우리는 어떻게 밥상을 차려왔을까. 아니, 지난 4년 농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와중에도 땅을 지키며 농사를 지어왔을까.

2015년 11월 14일, 1년을 준비한 민중총궐기 날, 농민들은 밥쌀수입 저지, TPP 반대, 쌀 및 농산물 적정가격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직사로 쏘아대는 물대포였고 그 물대포에 평생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꿔온 농민이 쓰러졌다. 그리고 1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어느 누구 한 사람 사과를 하는 사람도,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9월 25일, 백남기 농민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300일 이상을 버티셨고, 모두가 꼭 일어나시라고 기도했건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르신께는 죄송하지만 이게 올해 농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마지막 슬픔, 힘겨움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어린 시절 적어도 한 번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이대로 농민이 죽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밥 한 술 뜰 자격이 없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