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읍내 자전거포 ①] 짐바리 자전거가 나타났다

  • 입력 2016.09.10 22:46
  • 수정 2016.09.10 22:4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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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매우 불안해한다. 넉넉한 접착면적을 유지하며 양쪽 발을 땅바닥에 대고 있어야 평온하다. 자전거라는 놈을 처음 타봤을 때 그래서 겁이 났다. 두 발을 페달에 얹은 채로 허공을 호미질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신기하기에 앞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단짝 친구인 금렬이가 뒤에서 붙잡고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몇 바퀴 굴려보지도 못 한 채 신작로 바닥에 나동그라져서는 오른쪽 무릎에 피를 보고 말았다.

“첨 배울 땐 다 그래. 욕심 부리지 말고 다시 한 번…”

금렬이는 바다 건너에서 온 섬놈에게 기어코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치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했지만 자전거를 타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의 발로였다. 정직하게 내디딘 보폭만큼만 나아가면 되는데, 그것이 양에 차지 않아서 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닌가.

“꽉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자, 자, 옳지, 자알 한다….”

이번에는 제법 여러 바퀴를 굴리고 나아갔으나 이내 중심을 못 잡고서 또 자빠져버렸다. 금렬이 녀석은 꽉 잡고 있기는커녕, 한참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이번엔 왼쪽 팔꿈치가 벗겨져서 핏방울이 맺혀 있었는데도 녀석은 본 체 만 체였다. 대신에 자신의 쑥색 교복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양쪽 정강이며 무릎에 나 있는 흉터를 보여 주었다.

고향 마을의 사촌형 두 사람이 어느 여름 날, 기껏 예닐곱 살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배에 태우고서 노를 저어 한참 나아가더니, 내 사지를 들어 바다에 내던져버렸다. 어푸, 어푸…나는 허우적거렸고 형들은 한참 만에 건져 올려 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암만 못 해도 갱물을 말가옷은 마세야 헤엄을 배운당께.”

섬마을 출신인 나에게 자전거를 배우기란, 바닷물을 한 말 하고도 반 말은 더 마셔야 배운다는 수영보다도 배는 더 어려웠다. 내가 태어난 섬마을엔 학교 운동장 빼놓고는 반반한 평지가 드물었으므로 자전거라는 물건이 없었기 때문에,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얹어본 것이었다.

내가 진학한 읍내 중학교는 신작로에서 교사에 이르는 진입로가 3백여 미터나 되었는데 길 양쪽으로 플라타너스가 가지런히 조성돼 있었다. 내가 거처하던 작은댁은 학교에서 썩 멀지 않았으므로 걸어 다니기에 맞춤한 거리였으나, 수십 리 떨어진 면단위 지역의 아이들은 모두 자전거로 통학하였다. 첫 등굣길, 나는 학교 진입로를 가득 메운 자전거 행렬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자전거 짐받이에 도시락을 얹어 묶고서 경사진 진입로를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자전거 사태’였다. 장관이었다.

자전거 때문에 두 번째로 놀란 것은 1학년 가을 운동회 때였다. 운동회의 마지막 순서는 이어달리기도 아니고 마라톤도 아니었다. 자전거 경주였다. 첫 번째 경주는 학급 대표 한 사람씩이 나서서 겨루는 ‘슬로우자전거’ 시합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누가 넘어지지 않고 가장 적은 거리를 이동하느냐를 겨루는 경주였다. 살다 살다(열네 살밖에 안 살았지만) 가장 굼뜨고 느려터진 놈을 골라 상을 주는 시합을 구경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선수는 너무 앞으로 멀리 나아가버려서 탈락했고, 어떤 녀석은 제자리에서 버텨보려고 버둥거리다가 넘어져버렸다.

드디어 마지막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슬로우가 아니라 스피드경주였다. 그런데 우리 반 대표인 준석이가 희귀한 자전거를 끌고 출발선으로 나왔다. 다른 녀석들은 자전거의 무게를 줄이겠다고 도시락 묶는 끈을 떼어내고 전조등까지 뜯어내는 등 법석을 떨었는데, 준석이의 자전거는 뒤편 짐받이 쪽에 높다란 쇠파이프 지지대까지 달린, 매우 육중한 짐바리 자전거였다. 구경하던 학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양조장의 술 배달원인 아버지의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출발선을 떠난 자전거들이 두 바퀴째 돌다가, 모퉁이에서 그만 한 데 뒤엉켜서 와장창 넘어진 사이, 가장 꼴찌로 달리던 준석이의 짐바리 자전거가 당당히 1등으로 들어온 것이다. 1960년대 말, 시골읍내 중학교의 운동회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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