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호주농정

  • 입력 2016.08.28 06:16
  • 수정 2016.08.28 06:42
  • 기자명 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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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종 서울대 교수

전공하는 분야의 국제학회가 마침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게 되어 호주를 방문했다. 해외 여행할 때 비용 절감의 지름길은 외식을 줄이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나라나 인건비가 나날이 올라가는 추세이기에 어쩔 수 없고, 숙소도 단기 체류 아파트형을 선택한다. 어차피 관광 목적이 아니라 학회 참가이기에 한 곳에서 일주일 가량을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자연스레 식사를 위한 먹거리 장만으로 멜버른 시내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 들렀다. 빵과 치즈나 야채 등을 구입하면서 느낀 점은 늘 접하는 가격의 저렴함과 더불어 무엇보다 이곳의 먹거리 맛이다. 농산물 맛의 차이가 현저하다. 크기만 하지 아무 맛도 없는 한국 토마토에 비해 호주산은 어린 시절에 먹던 토마토의 그 맛이 살아있다.

한국에서 집안 행사 등으로 쇠고기를 구입할 때, 서민에게는 가격이 너무 높은 한우를 제외하고 미국산과 호주산을 놓고 선택하게 된다. 2008년도 촛불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는 국제기준에 맞게 30개월 미만으로 수입되고 있기에 미국 쇠고기를 염려할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보다 안전성이 문제되지 않는 호주산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 서울시민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주산 쇠고기를 맛본 이들 중에는 조금 독특한 냄새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차이는 곡물위주의 사료로 키운 미국의 소고기나 수입곡물사료로 키우는 한우의 맛과 비교할 때 비교적 넓은 초지를 활용한 호주산 소고기가 빚어내는 풍미의 차이로 보인다. 개인의 선호도나 기호라는 것은 맞다 틀리다 이전에 일종의 개인 습관과 같은 것이기에 그 점에서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말할 필요는 없다만 넓은 초지 생산 방식이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자 건강한 먹거리로 이어짐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호주의 농업이나 축산 환경은 한국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이고, 이는 한국의 개인 농축산인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나 규모를 넘어선다. 호주 농가의 95% 이상이 가족 소유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고 가족노동이 중심이지만, 호주도 농업인구의 완만한 감소와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어서 다양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농축산의 기업화다. 효율 내지 경제성에 기반한 정책제안으로서, 예를 들어 ‘스마트 팜’이란 개념으로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추진한다. 최근 LG그룹의 새만금 지역 스마트팜 투자가 논란이다. 과거 새만금 개발에 있어서 정부가 내세웠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대기업 농업 진출 기반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호주는 기본적으로 정부와 농민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대응하고 정책을 만들어 낸다. 어느 정도 자연 상태의 농업기반을 지닌 호주는 날씨나 기후의 영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 요인 극복을 위해 정부와 농가 사이의 긴밀한 협조와 대응책이 마련되고, 현장에 접목시키도록 한다.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한 지원 체제와 농축산을 위한 연구개발도 정부 예산 증대를 통해 활성화하고 있다. 또한 수출을 위한 해외 시장개척도 대기업에 책임을 미루기보다는 대부분 정부가 앞장서서 진행한다.

자연환경이 한국보다 좋은 호주에서조차 이처럼 정부가 농축산인과 함께 고민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며 농가가 할 수 없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하는 노력을 보인다. 정부는 기업의 농업진출에 대하여 당장의 효율과 이익을 위해 긍정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먹거리의 기반인 농축산은 당장의 효율이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적이자 안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보다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책임을 기업에 넘겨 농촌을 황폐시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능동적인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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