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촌, 법의 사각지대

  • 입력 2016.08.06 13:56
  • 수정 2016.08.06 14:11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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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환 변호사

사례 하나, A씨는 토마토를 하우스에 대량으로 재배해 농가소득을 극대화 시키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도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비닐하우스에 ICT(정보통신기술)를 도입하여 소위 스마트팜 형태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A씨가 가장 고마웠던 것은 마을 어르신 B씨가 당신이 소유하고 있던 농지 1만평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무려 7년 동안 임차해준 것입니다. A씨는 혹시나 몰라 어르신 B씨와 해당 토지에 대한 임대차계약서까지 꼼꼼히 작성했습니다. 사실 비닐하우스 설치를 위해 5억원의 빚을 졌지만, A씨는 그나마 주위의 도움으로 쉽게 농사를 짓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A씨가 토마토를 재배한지 2년이 지났을 때 어르신 B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때부터 A씨는 하루하루가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돌아가신 B씨의 상속인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비닐하우스가 설치된 땅을 C씨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땅이 팔린 뒤, C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A씨를 찾아와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자신에게 땅을 반납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 갚아야 할 빚이 수억원이 남아있는 A씨는 결국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땅에서 내쫓길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필자는 본지에 실린 2016년 7월 11일자 커버스토리 ‘21세기판 소작농’의 기사를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사례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이나 상가에 대해 부동산 등기가 가능한 것처럼 사과나무와 같은 수목의 경우에도 ‘입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기가 가능하다. 물론, 위 커버스토리에 실린 농민 분처럼 현실적으로 자기가 심은 사과나무에 대해 입목 등기를 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사과나무를 심은 토지임차인이 입목등기를 하면 토지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과나무를 기르고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그렇지만, ICT를 도입해 최첨단으로 지은 비닐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A씨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토마토 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법은 남의 땅을 임차해 거기에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을 등기했을 경우에 한해서만, 땅 주인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건물’ 주인은 자신의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는 현행 법제도 내에서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등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불행하게도 A씨는 최첨단 기술로 지어진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해당 토지를 C씨에게 반환해야 할 것이다. 결국, A씨에게 남은 것이라곤 은행에서 빌린 5억원의 빚뿐일지 모른다.

시대가 지나면서 법도 같이 바뀌거나 새로운 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주로 도시화·산업화에 따라 법도 이에 맞춰 변해왔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은 농업·농촌은 사정이 다르다. 우리 농업과 농촌이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본 사례처럼 관련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한편 갑을관계인 유통업자와 농민 사이의 일명 ‘밭떼기 계약’에서 발생하는 농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 법은 ‘밭떼기 계약’은 서면으로 체결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둘 사이에 구두로만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농업·농촌과 관련된 많은 법령들이 개정되고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원 및 육성에 관한 법령들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법의 제정에 있어 농업·농촌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 되어 있지 않거나 잘 제정된 법도 그 운영에 있어 효과가 미미할 때가 많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운영의 실효성을 높여 하루 빨리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촌을 구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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