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사드와 ‘자연사’

  • 입력 2016.07.23 10:50
  • 수정 2016.07.23 10:53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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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1930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요한 갈퉁 박사는 평화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평생을 평화연구에 헌신했으니, 전 세계 분쟁을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또 실제 분쟁을 중재하기도 했다. 그 갈퉁 박사가 일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1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면 북미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잠시 내 귀가 멍해 졌다. 2차 한반도 전쟁이 나면 어찌 될까. 미국이 앞장서 개전하면 우리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뒤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리 되면 전면전이다. 그래서 어림잡아 남북 공히 1,000만 정도는 죽거나 다치지 않을까 싶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내 주변 20% 전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사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될 거란 말이다. 나는 주변에 반농담조로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한국같은 ‘위험사회’에서 그저 자연사'만 해도 복받은 인생이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나 한반도 정세란 게 이리 지뢰투성인지라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찬송가가 나날이 절절하다.

따져보건대 힐러리 클린턴 미대선 후보의 외교노선이 과거 네오콘 못지않게 매파(Hawkish)적인 데다, 레짐 체인지' 비슷한 걸 선호한다는 점에서 갈퉁 교수의 우려는 기실 그 개연성이 낮지가 않다. 우선 확고한 친이스라엘 노선을 갖고 있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그녀의 당선은 재앙이다. 시리아 내전은 계속될 것이고, 더 많은 난민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눈을 동아시아로 돌려 보더라도, 힐러리가 집권 시 남북관계는 더욱 긴장되고 동아시아는 무한 군비경쟁으로 들어갈 것이다.

가뜩이나 불안하던 차에 한미 양국이 드디어' 사드배치에 합의했다. 이미 지난 2월 중국은 힘과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 선언했고, 러시아 역시 중국 못지않은 대응을 보일 조짐이다. 미 주도 미사일방어(MD)에 맞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인 러시아다. 그런데 우습게도 사드 뉴스를 들으며 순간 ‘앗 이건 뭐야, 잘하면 살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는 이렇다. 사드에 합의함으로써 우리는 미 MD체제에 편입되고, 통상전의 견지에서도 미 태평양사령부의 지휘 하 일본군의 하위파트너로 최전선 야전부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농후해 진다. 그리고 한미일 남방 3각 군사동맹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북·중·러 북방 3각 동맹도 급속도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리되면 고립된 북미전쟁은 존재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북미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즉시 두개의 3각 군사동맹 간 전쟁으로 비화되어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이다. 그래서 누구도 이런 고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지전을 감행하지는 못하지 않겠나 이런 말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고 희비극적인 전쟁억지 메커니즘 아닌가.

물론 이는 과장된 기우일 수도 있고, 그저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를 읊어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사드배치 전과 후는 분명히 다른 국면이다. 사드는 미국의 ‘전략적 리밸런싱’ 기조하, 아시아태평양 APPAA(Asia-Pacific Phased Adaptive 
Approach, 단계적-조절적 접근)라는 군사전략의 주요 고리다. 유럽PAA는 러시아를, 아태PAA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사드의 1차목표는 우리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그 미군의 자산 및 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드배치는 곧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속에 한국이 불가역적으로 편입됨을 뜻한다. MD와 분리시켜 사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리밸런싱과 PAA의 전개에 있어 한미일 군사동맹은 핵심 구성요소다. 지난 수년간 미국은 이 전략적 목표하에 삼각동맹구축에 걸림돌인 한일 간 위안부문제를 중재해 최종적으로 해결(?)'했고, 개성공단이라는 필드장애물 철거를 환영했다. 한미일 3국 군사훈련은 이미 정례화되었고, 갈수록 그 수준도 높아 가고 있다. MD체제의 운용에 있어 한일 군사정보공유도 필수적인지라 앞으로 한일 군사교류는 더욱 활발해 질 것이다.

힐러리가 당선되더라도 당장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의 외교노선이 사실상 미 민주당버전 네오콘에 가깝고, 한미일 삼각동맹이 미국의 확고한 동아시아전략인 이상 한반도 평화는 갈수록 요원해지고, 그래서 우리 모두의 자연사확률도 줄어든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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