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5] 그래서 난 행복합니다

  • 입력 2016.07.10 09:24
  • 수정 2017.05.26 10:2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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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윤석원의 농사일기]

오늘은 장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비 오는 날이면 공치는 날이니 요란한 빗소리 들으며 농장 한켠에 놓아 둔 1.5평 창고에 무심히 앉아 농장을 내려다 보고 있다. 플라스틱 창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욱 크게 울린다. 이런 날이면 난 조금은 감성적이 되곤 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도시생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평온함에 폭 빠진다.

내 나이 이제 60이 훌쩍 넘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향 양양을 떠났다가 5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사실 어릴 때 친구들이나 친인척들은 모두 외지로 먹고 살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어릴 적 뛰놀던 바다며 바위, 들판 그리고 나지막한 야산만은 세월을 잊은 채 그대로일 뿐이다. 고향이지만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낯선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모두를 품어주고 세대를 뛰어 넘어 담담하게 그 자리에 있으면서 우리를 맞아 주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인생을 살면서 혼자 살 수는 없으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벗이 있고 가족이 있음으로 이들과 함께 모진 세월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노후에 농사를 짓겠다는 지인들과 과수원 일을 하느라 힘들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도 누구나 그렇듯이 평생을 두고 알아 온 지인들이 많이 있다. 연구원 다닐 때 알았던 친구 동료들, 대학에 있을 때의 동료교수들, 시민사회 운동하며 알았던 운동가들, 내가 살았던 곳의 이웃들 등 나름대로 많이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부분 서울 등 도시에 산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노후에 농사를 업으로 살아가려는 나를 응원해 주고 항상 옆에서 도와주는 고마운 벗들이 있다. 아직은 도시에 살면서 현직에 있는 친구도 있고 명퇴한 친구도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더 나이 먹으면 이곳 농촌으로 내려와 함께 웃고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자는 벗들이다. 이미 나의 밭 옆 땅을 장만해 놓고 있기도 하다.

과원을 조성할 때 부부동반으로 내려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농사일을 하느라 힘들어 했지만 즐거워했고, 나의 밭에는 지하수가 없으니 벗들의 밭에 있는 지하수를 연결해 주어 관수시설을 쓸 수 있게 배려해 주기도 했으며, 가끔씩 내려오면 창고며 물탱크며 전기시설 등을 체크해 주고, 거금을 들여 농사용 전기 계량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자기네 텃밭의 풀 보다 내 밭의 풀을 더 걱정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부족함이 많은 우리 내외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는 벗들이다.

오늘 비오는 날, 그 벗들이 새삼 보고 싶어진다. 호박전이라도 부쳐 먹고 싶어진다. 다들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런 벗들이 있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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