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수렵 ②] 지리산 포수

  • 입력 2016.07.08 14:08
  • 수정 2016.07.08 15:42
  • 기자명 이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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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내 아부지가 나에게 물려준 가장 ‘풍성한 유산’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난이었지만, 그것이 모두는 아니었다. 아부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아부지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단연 지리산 포수 얘기다.

옛날 지리산 아랫마을에 꾀 많은 포수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포수는 호랑이 사냥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아들에게 톱과 망치와 칼과 나팔을 챙기라고 명하였다. 아들이 물었다.

“아니, 호랑이를 잡으려면 총을 갖고 가야지 왜 이런 것을…”

“너는 ‘지리산 포수’라는 말도 못 들어봤느냐? ‘함흥차사’하고 같은 말이니라. 호랑이 잡겠다고 엽총을 메고 지리산에 들어갔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혀서 돌아오지 못 한 포수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포수가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어쨌든 지리산 깊숙이 들어간 포수 부자는 우선 나무를 베어서는 사방을 빙 둘러가며 말뚝을 박았다. 다 박고 보니 포수 부자는 동그란 말뚝 울타리 안에 갇힌 모양이 되었다.

“자, 이제 신나게 나팔을 불어라!”

아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포수가 시키는 대로 나팔을 신나게 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나팔 소리를 듣고서 사방에서 호랑이들이 몰려왔다. 본시 나팔소리를 좋아하는 녀석들인지라, 호랑이들은 흥에 겨워서 엉덩이를 말뚝에 대고 비비며 춤을 추었다. 포수가 호랑이 꼬리 두 개씩을 잡아서 각각 말뚝을 가운데 두고 묶었다. 이어서 포수가 칼을 가지고 호랑이들의 목 언저리며 네 다리를 그어서 칼집을 내었는데도 녀석들은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후 포수가 아들에게 나팔 연주를 멈추라 했다. 호랑이들이 춤추는 것을 멈추고 어리둥절해 있는 참에, 포수가 아들의 나팔을 빼앗아서는 갑자기 “빼엑!”하고 불었다. 깜짝 놀란 호랑이들이 각자 앞으로 돌진하였다. 가죽은 모두 말뚝에 걸린 채로 호랑이들은 알몸만 퐁, 빠져나간 것이다. 호피를 잔뜩 짊어지고 돌아온 포수 부자는 오랫동안 자알 먹고 자알 살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부지가 내게 했던 그대로 어린 딸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알맹이만 퐁!>이라는 그럴 듯한 제목을 붙여서.

2001년 이른 봄, 전설의 ‘지리산 포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지리산의 칠선계곡과 봉황계곡이 합쳐지는 어름에 자리한 마천고을에 가면, 왕년의 포수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옛날엔 우리 동네에 포수가 쌔고 쌨었지. 김 포수, 정 포수, 박 포수…. 그러나 누구니 누구니 해도 시방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는 민 포수가 명포수였제.”

마천고을 동구에서 만난 할머니가 첫손에 꼽은 왕년의 명포수는 민동식 할아버지였다. 그 때 67세였으니 지금 생존해 있다면 여든둘이다.

민동식은 어린 시절부터 산짐승들을 사냥하는 포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자랐고, 20대 중반부터는 순전히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직업포수의 길로 나서서, 엽총을 들고 지리산의 이 능선 저 자락을 누비기 시작했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미군부대인 제7사단에서 복무했던 민동식은, 이미 훈련소 시절부터 발군의 사격실력을 발휘해서 한국군은 물론 미군들로부터도 ‘귀신의 머리카락도 맞힐 수 있는 총잡이’란 찬사를 들었다. 특등사수였던 민동식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에게 사냥을 하도록 권한 사람은 같은 마을의 베테랑 포수인 노 포수였다.

“엽총 한 자루가 논밭 열 마지기보다 낫다는 말 못 들어봤냐? 윗마을 아랫마을 옆 마을 다 가봐라. 이 지리산 자락에서 번듯한 집 차지하고 사는 사람은 전부 다 포수들이다. 여러 말 말고 내일부터 내 조수로 따라 나서라.”

드디어 민동식은 노 포수의 꾐에 빠져서, 농사일 따위는 나 몰라라 팽개치고서 엽총을 메고 나섰다. 처음 따라나선 사냥터는 운봉 일대의 지리산 자락. 발소리에 놀란 꿩이 풀숲에서 푸드득, 날아오르자마자 노 포수의 엽총이 불을 뿜었다. 명중이었다. 장차 명포수가 될 민동식의 입이 딱 벌어졌다.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던 그의 야성이 방망이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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