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바다와 맞닿은 비탈진 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 밭과 밭이 만나 이루는 완만한 곡선이 꼭 야트막한 산 능선처럼 이어진 곳에 농민들이 점점이 서 있다.
농민들의 노동의 흔적이 오롯이 남은 자리엔 빨간 망들이 촘촘히 놓여 멀리서 보기엔 빨간색 대형 그물을 밭 전체에 펼쳐놓은 것 같다.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지난 14일 우리나라 양파 주산지 중 한 곳인 전남 무안군 현경면 일대는 막바지 양파 수확에 온 고장이 부산했다. 현경면을 가로지르는 2차선 국도엔 빨간 양파 망을 가득 실은 트럭이 수매장 또는 판매처를 향해 쉴 새 없이 오갔고 국도변 갓길에는 막 수확한 양파를 직접 팔기 위해 농민들이 세운 ‘점방’ 또한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다.
운전을 하며 시선이 가닿는 곳 마다 양파를 빨간 망 혹은 톤백에 담는 농민, 20kg이 넘는 양파 망을 트럭에 적재하는 농민, 양파밭 한가운데 삼삼오오 모여 참을 챙겨먹는 농민들의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현경면 수양리에서 만난 한 여성농민도 나주, 영암, 함평 등지에서 일하러 온 할머니들과 함께 양파 수확에 여념이 없었다. 미리 양파대를 자르고 며칠 간 밭에서 건조한 양파를 망에 담는 작업이 한나절 가량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밭고랑에 앉아 잠시 한 숨을 돌리던 여성농민은 올해 양파 작황이 예년만 못하다고 말했다. 올 봄 잦은 비에 양파가 웃자라고 노균병이 발생한데다가 수확을 앞둔 시기엔 이상고온이 겹치면서 양파가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양파대만 훌쩍 커버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 농민은 이를 두고 올 봄엔 양파밭에 물을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제대도 돌려본 적이 없을 정도라도 표현했다.
인근의 다른 밭에서 양파 수확에 나선 안해숙(51)씨는 “그나마 다른 밭보다 (양파) 품질이나 수확량이 좋은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인다”면서도 “올해는 정말 이상기후 때문에 농사짓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씨의 밭에서 작업을 하던 문순임(73)씨도 “여러 밭에 가서 수확을 해봤지만 이 곳 양파가 가장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현경면의 양파 농가 대부분은 전남서남부채소농협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양파를 키운다. 올해 계약재배 금액은 양파 20kg 1망 당 1만1,000원. 그 중 수확철 일손 부족으로 농협에 수확, 운반, 수매 등의 작업대행을 의뢰할 시 1망 당 2,850원을 제한 금액을 받는다.
전남서남부채소농협의 전승룡 과장은 “수확기에는 매일 약 10만개(20kg 1망)의 양파가 농협으로 들어온다”며 “양파 둘레 길이 6.5cm이상이 수매 대상이나 기준 이하의 양파도 상품의 절반 가격으로 수매해 농민들에게 좀 더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과장과의 대화 중에도 양파를 가득 실은 차량은 쉴 새 없이 농협 수매장으로 들어와 양파더미를 내려놓은 뒤 다시 수확 현장으로 떠났다. 수매 모습을 지켜보는 기자에게 전 과장은 “빨간 깃발이 매달린 차량이 바로 작업대행 차량”이라고 귀띔했다.
수양리에서 만난 농민 박광순(42)씨는 “현경면도 이번 주 안으로 양파 수확이 얼추 마무리될 것 같다”며 “무안 농민에게 가장 큰 농사이니만큼 가격도 판매도 원활하게 이뤄져 오랜 시간 고생한 농민들이 좀 더 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후 늦게 차를 돌려 다시 2차선 국도를 달렸다. 여전히 시선이 가닿는 곳엔 비탈진 밭과 빨간 망 주위로 점점이 앉아 양파 수확에 여념이 없는 농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취재 사진은 극히 일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