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나의 저 어린 것들을 꽂다

  • 입력 2016.06.17 10:43
  • 수정 2017.10.24 11:19
  • 기자명 강광석 강진군농민회 성전면지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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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광석 강진군농민회 성전면지회 사무장

천수답 논, 귀리 경작논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전남의 경우 전체 농지의 95%는 모내기를 끝낸 것 같다. 이른 나락은 벌써 새끼거름을 주고 있다.

지난 보름, 치열했고 많이 가벼워졌다. 봄은 다 왔고 가을까지는 멀다. ‘금방이여’. 금방이 쌓여 세월이 되었는데 그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모내기는 끝났고 다른 모내기가 기다린다. 

“뒤도 안 돌아본다”고 말하고 실지 뒤를 돌아보지 않은 농민은 거의 없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손놀림하는 가식(加植) 얘기다. 기계 조작에 능한 이앙기 기술자는 사각형 논을 인절미 썰듯 나누어 거의 대부분 심고 말지만 그래도 기계 발자국에 씹혀버린 모는 있게 마련이다.

모내기하고 남은 모를 논 여기저기에 나누어 던져 넣는다. 사각형의 사각지대, 네 귀퉁이 먼저 심고 앞뒤 12줄(6조식 이앙기 기준)을 손본다. 트랙터부터 이앙기까지 방향 턴 하는 자리라 땅이 물러서 아무래도 허실이 많은 자리다.

여기까지는 거의 모든 농가가 다 한다. 한마디로 필수다. 다음은 논 긴사리 양쪽 제일 가장자리다. 여기는 이앙기 식부판 높이보다 낮은 두둑은 상관없이 심고 가지만 높은 경우 30센티미터는 무조건 땅이 남는 자리다. 그 자리에 모 한포기 꽂는다.

마지막 모와 두둑 사이, 예취기 날이 들어갈 자리를 남기고 심는다. 이 공정은 대농은 거의 하지 않고 소농은 거의 한다. 그 기준은 50마지기(약 1만 평) 정도다. 그리고 논 안쪽을 파고든다. 손바닥 크기만큼 모판을 잘라 사람보다 앞세우고 염소 몰듯 보통 6줄을 잡고 논을 횡단한다. 95미터 논을 8회에서 10회 정도 횡단한다.

보통 반나절, 하루에 두 방구하는데 모 심고 보름이 지나도록 한다. 우렁이가 먹어버린 깊은 자리 논은 새끼를 치고 한참이 지나도록 모 나누어 심기 방식으로 가식한다. 중간에 한 포기 빠졌다고, 낱모가 많다고 가을 수확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데 이걸 안 하면 밥 먹고 커피 한 잔 안 한 것 같고 물건 사고 거스름돈 안 받은 것만치 찜찜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동네 아낙들이 품앗이를 했는데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물 논에 들어가는 일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논 한가운데 서면 한 마지기 논(100평)도 그렇게 커 보인다. 논 한가운데서 보면 모들이 하나하나 보인다.

논머리에서 보면 평수는 쬐끔하고 다들 안녕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살은 다르다. 모 하나하나 보이고 보이는대로 소중하다. 소중하면 그립고 그리우면 보고 싶고 보면 저절로 정성스럽게 된다. 봄 땀의 기억을 가을까지 각인하는 것, 내 몸의 기억에 저 어린 것들을 넣는 행위가 가식이다. 뼛속까지 저것들을 내 것들이 되게 나를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네 발로 기어야 눈이 낮아진다. 

나락이 4만원에 팔려 나갈 때 ‘나의 내 것’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움과 정성이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볼품없어지는 것이다.

180만톤의 구차한 삶을 점령하러 2만5,000톤 수입 밥쌀용 쌀이 정부관료의 안내와 통역을 받고 점령군처럼 항구에 들어온다. 수입쌀을 있으니 먹는가, 먹으니 있는가, 있어도 되는 건가, 먹어도 되는 건가 말은 많아도 느자구 없는 것들이 늘 그렇듯 씨알머리가 없다.

‘나라없는 나라’에서 전봉준의 호위무사 을개가 난군을 진압하러 나온 관군 지휘관에게 한 말은 “씨부려 봐봤자 너는 일본군의 똥개여 알어?”였던 것 같다. 네 발로 논바닥을 기는 농민과 네 발로 주인의 뒤꿈치를 핥는 똥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3월에 주문했다 아직 달지 못한 플랑을 만지작거린다. ‘밥쌀수입금지, 변동직불금 축소반대’ 

아직 가식은 몇 단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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