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유례없는 흉작 … 김제 보리 수확 현장 ‘한숨만’

잦은 강우에 쭉정이 투성 … 수확량 3분의 1도 안 돼

  • 입력 2016.06.10 12:14
  • 수정 2016.06.10 12:26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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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 보리 재배 농민 박명석씨가 콤바인으로 막 수확한 보리를 톤백에 담고 있다. 이 날 박씨는 논 세 필지에서 보리 톤백 하나 반을 수확했다.

지난 8일 전북 김제시 보리 수확 현장을 찾았다. 이곳의 많은 농민들이 벼와 보리 이모작 농사를 짓기 때문에 보리 수확과 동시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유례없는 보리 흉작에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보리 수확에 나선 김제 청하면의 박명석씨는 보리가 반쯤 차 있는 톤백을 가리키며 연신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한 필지(1,200평)에서 나온 거야. 예년 같았으면 두 톤백은 나와요. 40kg 가마로 따지면 평소엔 50가마 정도 나오고 풍년이 들면 70가마 까지도 거뜬한데, 올해는 10가마는 될까…. 수확량이 평소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고 보면 돼요. 여기 주변 상황 거의 똑같아요.” 

보리 작황이 좋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겨울부터 올 봄까지 비가 너무 자주 내렸기 때문. 보리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열매가 여물지 않았고, 쭉정이가 돼 버린 보리는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동시에 밖으로 새어나갔다. 

“비가 너무 자주 와서 보리 작황도 안 좋고 이상하게 논도랑 우렁이도 크기가 작아졌어요. 예전엔 이보다 컸거든요. 이상하게 크기가 작아요. 일교차도 너무 크고 날씨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들죠.” 박씨가 말했다. 

박씨와 마찬가지로 보리농사를 짓는 장경익씨가 톤백에서 보리를 한 움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보리 알맹이가 커서 둥글둥글 해야 하는데 작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여물질 않은 게 딱 보이죠. 농사지은 지 17년이 넘었는데 이런 적이 없었어요. 이 정도면 이상기후라고 봐야죠.” 

▲ 장경익씨가 보리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알맹이가 둥글게 크지 못하고 작다.

보리 생산비는 한 필지에 70~80만원 정도지만 올해 수확량으론 50만원도 안 나오게 생겼다며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한 필지 당 100~150만원 정도의 소득을 바라보고 지은 보리 농사였지만 차라리 안 짓느니만 못하게 됐다. 더구나 이모작을 하면 모 심는 시기가 늦어져 벼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2중으로 손해를 보게 될 판이다. 

박씨는 “콤바인 대여비가 23~26만원인데 오늘 작업한 거 팔아서 대여비 주면 딱 맞겠다니까요. 아예 수확한 보리 가져가라고 해도 되겠어요”라고 쓰게 웃으며 “지난해 쌀값도 2만원 이상 떨어졌고 밭농사로 생강 조금 하는데 생강도 작황이 안 좋았지. 이번에 들깨나 콩이나 심을까 하는데 콩도 4,000원대 하던 거 지난해 2,000원대로 떨어졌죠. 해 먹을 게 없어요”라고 한탄했다. 

약 세 필지에 해당하는 보리 수확 작업 후 박씨는 곧바로 보리를 톤백에 담았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콤바인의 요란한 소리가 멈췄다. 수확량은 톤백 하나 반. 트럭 한 대로도 충분히 실어 나를 수 있는 분량이다. 박씨를 돕기 위해 본인 트럭을 끌고 온 한 이웃은 도우러 온 보람도 없이 빈 트럭을 끌고 돌아가야 했다. 

점심시간 식당에 모여든 농민들은 서로 만나자마자 보리 얘기부터 꺼냈다. “완전 적자 나버렸다”, “논 하나는 잘 나왔는데 다른 하나는 완전 버렸다”, “수확량이 너무 없다” 등 다들 사정은 비슷하다. 

이 지역 농민들은 대부분 농협 계약재배로 보리를 판매하고 있다. 보통 40kg 기준 쌀보리는 4만원, 겉보리는 3만9,000원 수준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가 너무 커 계약재배 단가 조정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지역 농협 직원은 “우리가 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또 보리는 농작물 재해보험 대상 품목에서 제외돼 있어 피해 농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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