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가슴에피’를 들어보셨나요?

  • 입력 2016.05.22 12:25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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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어린 나이에 식구 하나 줄일 요량으로 얼굴 한번 못 보았던 사람과 결혼이란 걸 하게 된 소녀들이 특히 많은 곳이 바로 농촌입니다. 또한 수더분하고 착하게 생겨 꼭 맏며느리 감이라고 어릴 적부터 늘 어른들에게 칭찬받은 분들이 많은 곳이 바로 농촌입니다.

옆집 할머니가 그런 사람 중에 한 분입니다. 그녀는 ‘가슴에피’라는 병을 앓고 계십니다. 일명 화병입니다.

맏며느리. 집안의 대소사에 마을의 대소사까지 주어진 부담에 묵묵히 그 책임을 다해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낙인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일을 잘 해낸다고 해서 보상이나 인정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고 어쩌다 어긋나게 되면 비난이 가해지기도 합니다. 맏며느리라는 이름의 댓가는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집안에 큰일이 생기고 어려움이 있어도 하늘이 내린 맏며느리는 늘 묵묵히 그 역할을 다해야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세상이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한 곳이 바로 이곳 농촌입니다.

명절이면 다들 고향으로 갑니다.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마냥 신나는 것이 아닌 아들과 마지못해 오는 며느리를 맞이하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시댁이라고 이름 지어진 가족관계는 며느리라는 이름의 희생에 기반해서 여성들 사이의 갈등이 시어머니, 시누이 이따금은 동서지간에도 벌어지고 있으니 희한하기만 합니다.

그녀가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에피라는 울화병의 치유과정이기도 합니다.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규정된 삶을 산다는 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내 자식들에게까지 아들에게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되는 사람으로 딸에게는 남자만 잘 만나면 된다고 가르쳤으니 내가 이 병을 유전병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십니다.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던 고정관념은 혼자서 깨기란 쉽지 않지만 하나가 모이고 둘이 모이고 그렇게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바뀐다는 것을 알기에 시작할 수 있다고요. 아직도 여전하기만 하지만 그녀들이 있기에 변화는 시작됩니다.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그녀들이 이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풀 한 포기까지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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