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20대 총선, 구조조정 그리고 양적완화

  • 입력 2016.05.08 21:18
  • 수정 2016.05.08 21:20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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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영 한신대 교수

4.13 선거는 정치적으로 보자면 그 의외성에 비추어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까. 물론 내가 말한 그 의외성이란 게, 뚜껑 열어 보니 도무지 헛소문보다 못한 엉터리 여론조사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4.13 총선 결과는 차라리 신보수요,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기간 중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쉬운 해고를 위한 노동법개악 반대와 같은 사회경제적 의제의 대중적 조직화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일부 소수 진보정당을 제외하고 주요 정당 어디도 이를 쟁점화 할 의사가 없었다. 따라서 기꺼이 투표소로 달려가 야권에 몰표를 던진 한국의 젊은 ‘장그래’들에게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그래’, 이른바 프리카리아트(Precariat), 비정규직의 기대와 이익이 배신당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의미는 혹 아닐까.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구조조정 화두를 선도했고, 안철수 대표도 역시 구조개혁을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밑밥은 조중동이 이전부터 말해온 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우리 주력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위기론이다. 오호라, 총선 참패 후 찌그러들었던 정부로선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었지만 뭐 그렇다고 나쁠 건 없다. 야권으로서도 여야정의 구조조정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절호의 기회이고 이를 통해 경제와 민생에 업적을 남기면 앞으로 대권 경쟁에서 전혀 손해 볼 일 없어 보였다. 

자본 측이야 당연 꿀 먹은 벙어리다. 야권이 총선에서 대승했을 때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건만, 이제 보니 잘하면 구조조정 대박 아닌가. SNS를 휩쓸던 좌우를 막론하고 그 말 많은 논객들 모두 일치단결 여기에 대해선 “그리고 아무 말도 없다”. 진정한 의미로 구조조정을 위한 침묵의 카르텔이 만들어 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시민사회 역시 오불관언, 나 몰라라다. 대개 경제이슈에는 과거에도 이랬다. 소위 ‘찌질한’ 정치평론가들이야 경제문제니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할 게 뻔하다. 

야권으로서야 구조조정 하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사회안전망 타령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때도 하던 말이고 조금도 새롭지 않다. 당시에도 사회안전망이란 오히려 IMF측에서 하던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구조조정이란 하나의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을 중심으로 논란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미 진 싸움을 하겠다는 말과 진배없다. 야권의 대승을 통해 확인된 다수 유권자 특히 ‘장그래’들의 표심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재벌을 개혁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라는 거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기 바쁘게 이 목소리는 소멸되었다. 바야흐로 ‘구조조정 대연정’이 상립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 10년 전 한-미 FTA 때 나는 이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은 한나라당도 동의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나 구조조정과 양적완화가 동시에 논란이 되는 것은 현 국면의 특수한 사정을 아주 제대로 표현해 준다. 조선, 해운 등 부실 재벌기업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조달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나서서 산업은행 등이 해당 기업에 대해 가진 부실채권을 인수하라는 소리다. 이러나저러나 그 핵심은 공적 자금, 곧 세금을 쏟아 부어 재벌 기업을 살리자는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 해당 산업의 노동자의 대량 해고는 이미 깊숙이 진행 중이다. 해고라는 노동의 구조조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양적완화라는 자본의 구조조정은 그 구제방안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 경험이 입증하듯 위기는 언제나 자본에게 기회였다. 그리고 위기라는 포연이 걷히고 언제나 웃는 쪽은 자본이었다. 

설사 아무리 구조조정이 지금 대세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번 총선 ‘혁명’의 최대 ‘성과’가 되고 있는 이 현실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그것도 노동자들이 내는 세금을 가지고 말이다. 정말 이렇게 외치고 싶다. 한국의 ‘프리카리아트’여,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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