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정미소②] 「파주 정미소」 주인은 안녕하실까

  • 입력 2016.04.30 10:29
  • 수정 2016.04.30 10:3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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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에 ‘파주정미소’가 있었다. 그 정미소의 쥔장은 지흥옥이라는 분이었는데 1935년생이니 금년에 여든두 살이 된다. 내가 그를 만나, ‘방아 찧으며 살아온’ 내력을 들었던 때가 2003년 가을이었으니 어느 결에 13년이 흘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바로 그 파주리에 ‘파주정미소’가 아직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이 정미소가 그 정미소인지는 모르겠다. 지흥옥이라는 그분이 아직 팔팔하게 생존해 계셨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써놓으면…”, 그랬었는데 그 동안 잊고 있다가 여기, 짧은 지면에 소개하게 되어 죄송하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비암리 자그마한 산간마을이 그의 고향이다. 일찍이 전쟁 통에 할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다. 1958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살길이 막막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이 어린 아내와 줄줄이 동생들까지…그 대식구가 논밭 몇 뙈기에 매달려서는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고모부가 생계 방책을 내놓았다.

“외양간에 있는 암소 저놈을 팔아서 중고 발동기 한 대를 사거라. 우리 마을만 해도 방앗간이 없어서 사람들이 곡식을 이고 지고 고개 넘어 큰 마을까지 다니는 형편이 아니냐. 그러니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방아를 찧어주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야.”

스물다섯 청년 지흥옥은 고모부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4.5 마력짜리 중고 발동기 한 대를 사서 수리하였다. 일제 야마하(YAMAHA) 발동기였는데 사람들은 그냥 ‘얌마’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그의 ‘방아 찧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보통은 곡식을 많이 가진 집의 마당에다 기계를 설치하고 이웃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그 집으로 방아 찧을 곡식을 져 날랐으나, 어떤 마을은 마을 한복판의 공터에다 임시 정미소를 차리기도 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기계를 운반하는 일이었다. 발동기는 두 바퀴와 몸통을 분리해서 져 날랐는데 문제는 기계의 몸통이었다. 20대 청년이었던 지흥옥도 기계 몸통을 지게에 지고 일어날라치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대개 마을에서 ‘장사’ 소리를 듣는, 기골이 장대한 청년들이 번갈아 지게등짐을 했다. 원동기의 바퀴는 데굴데굴 굴려서 운반해도 됐으므로 힘이 덜 들었다. 물론 기계를 운반하는 일을 해주었다고 해서 무슨 노임을 주고받는 경우는 없었다. 다들 내 일이려니 여겨서 그렇게 일손을 보탰다.

원동기는 보통 마당이나 공터의 한가운데에 앉힌다. 그러고는 쌀의 겉껍질만 벗기는 현미기를 한 쪽 끝에, 그 현미를 다시 정제하는 정미기를 다른 쪽 끝에 장치한다. 현미방아를 찧을 때는 원동기와 현미기를 피대(벨트)로 연결하고, 정미를 할 때에는 피대를 벗겨서 정미기에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원동기를 장치하는 일이었다. 발동기를 그냥 흙바닥에 놓으면 기계가 요동을 쳐서 난리가 날 터이므로 바닥에 침목을 깔고 그 위에 기계를 앉혀야 했다. 그 정도로 안심할 수 없었으므로 침목이 움직이지 못 하도록 사방 귀퉁이에 말뚝을 박아 고정하였다. 발동기 한가운데에는 열을 식히기 위하여 수시로 물을 채워 담는 물통이 있었다. 그런데 발동기의 진동 때문에 그 물이 흘러넘쳐서 바닥이 곤죽이 되어 철벅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침목을 고정하는 말뚝을 다시 박는 등 그 고초가 말이 아니었다.

원동기를 앉히는 일이 끝났으면 이제는 원동기와 정미기, 그리고 원동기와 현미기를 일치시키는 작업을 한다. 정미기 바퀴에 감은 피대를 끌어다 원동기 바퀴에 걸고서 몇 바퀴를 돌렸을 때 피대가 벗겨져 버리면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은 것이니 기계를 움직여서 위치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원동기는 고정돼 있으므로 현미기나 정미기를 움직여서 수정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또한 만만치가 않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네 노인이 한 마디 한다.

“허기사, 일심동체라는 부부도 손발이 안 맞아서 걸핏하면 싸우고 갈라서고 하는디, 생판 연분이 없는 기계를 갖다놓고 ‘앞으로 나란히’를 시키는 것이 어디 쉽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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