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강원 양양서 미니사과 농사 시작

[농경제학자, 초보 농사꾼 되다]
“이 땅의 농민들 다시금 존경 … 노동으로 이어지는 농사일, 쉽지 않아”
보조금 통장 만들고 친환경 교육도 받아

  • 입력 2016.04.17 08:59
  • 수정 2016.04.20 09:3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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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업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농경제학자’의 농사짓기는 학문의 완성단계였다. 지난해 1년 반이나 정년퇴직을 앞당겨 농부로 변신한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서 ‘미니사과’로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땅 파기가 제일 힘들다”는 하소연도, “이 땅의 농민들 다시금 존경한다”는 말 한마디도, 한층 더 깊고 짙어진 농업경제학자의 면모가 물씬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가 농사공부에 여념이 없다.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서 미니사과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교육을 매주 꼬박 5시간씩 받는가 하면 ‘이웃 농사선생님’께 단계단계 지도·점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혼자 농사짓겠다던 호언장담에는 실패, 부인 박미숙씨와 밭으로 출퇴근을 동행하는 중이다.
지난 11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강선리 ‘물치항’이 눈앞에 있는 윤 명예교수의 밭에 이웃의 ‘농사 선생님’이 숙제검사 차 방문했다. 심어놓은 미니사과 관리는 어떤지, 나머지 밭 로터리 작업은 또 어떻게 될 건지 조언이 이어졌다. ‘농사 선생님’이 퇴장하자 곧 트랙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후에 로터리 작업하기로 돼 있는데, 우리 밭에 오는 건가” 윤 명예교수의 마음이 다급해 진다. 로터리 작업 전에 유기질 비료를 뿌려놔야 순서가 맞는데, 어쩐다.

농촌의 시간이란 대학의 강의시간처럼 정확하지 않았다. 일부는 직접 비료를 흩뿌리고 일부는 트랙터에 맡겼다. 20kg 비료 한 포대를 ‘끙’ 하고 들어다 옮기는 윤 명예교수의 자세가 솔직히, 힘겨워 보인다.

“농사라고 소개하기도 부끄럽다. 생업으로 농사짓는 분들에게는 취미 수준이라. 550평 밭에 350평은 미니사과를 심었고, 오늘 로터리 치는 나머지 밭에는 고추를 심을지 들깨를 심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감자·고구마는 산짐승 피해가 많아서 안 심는다는 말을 들었다.”

3주 전에 심은 미니사과 묘목은 몇몇 그루를 제외하곤 엄지손톱만한 싹이 돋아있다.

윤 명예교수는 사실 ‘강단에서 물러나면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지는 오래됐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작목을 심을 것인지, 얼마나 심을 것인지를 정하진 못한 상태로 지난해부터 양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친환경 교육’을 받아왔다. 교육 과정 중 현장실습으로 따라 나선 곳이 마침 구입한 밭에서 지척인 ‘농사 선생님’ 과수원이었다.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 지난해 친환경 인증 신청을 해 놓고, 교육을 받던 차에 ‘멘토’를 만나 일이 착착 진행됐다. 농사 까막눈이니 농사선생님께 무조건 매달렸다. 내가 다른 복은 없어도 선생님 복은 많다.”

이후 미니사과 작목반에도 가입하고, 스마트폰까지 새로 마련해 ‘밴드’에도 참여했다. 작목반 차원에서 실시간 공지가 뜨니 옛날 핸드폰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올해 친환경 검사에 통과하면 내년에는 ‘친환경 인증서’도 받는다.

미니사과 206주. ‘친환경’ 농사를 하는 덕에 묘목값 50% 지원도 받았다. 윤 명예교수는 “보조사업 별로 농협 가서 각각 통장을 다 만들어야 하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그것도 도시에서처럼 인터넷뱅킹이 아니라 직접 통장 거래를 해야 하니까, 농협에 수시로 다녀야 한다. 어느날 묘목 가지러 간 작목반에서 통장에 자부담금을 바로 넣으라는 연락을 받고, 스마트폰으로 이체한다고 아주 소동이 일어났다”고 실수담을 공개하며 “보조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통장을 사업별로 만들어야 하지만, 사업이 끝나면 통장도 폐기한다. 다른 방안이 없는지 고민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땅 파는 게 제일 힘들다”고 강조하는 윤 명예교수는 “높은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 땅 좀 파보게 해야 농사가 어떤 건지 노동이 어떤 건지 알게 되는 것 같다”고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넸다.

미니사과는 심었으되 할 일이 태산이다. 윤 명예교수는 “관수시설을 했는데 정작 물이 없다. 관정을 어찌할지 고민해야 하고, 나무 밑에 부직포를 깔아서 풀 대비도 해야 하고. 처음 농사 구상했던 게 무상할 정도로 얼떨떨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농사일이 진짜 쉽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배운 셈이다”며 “농업이 생업인 농민분들, 정말 위대하다. 우리 사회가 알아줘야 한다”고 평소의 농정비평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월요일은 친환경 교육 5시간 수업, 목요일은 대학원 강의로 서울행, 평소엔 오전 농사일, 일주일이 빠듯하다고 설명하는 윤 명예교수의 얼굴이 청년 같다. 하지만 애초에 혼자 농사짓겠노라 호언장담에는 실패했다고 곧 실토하면서 “농사는 혼자 못한다. 혼자하면 2개밖에 못하는데, 거들면 5개 한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부인 박미숙씨는 ‘와서 구경만 하라’는 남편의 말을 애초부터 다 믿지 않았지만, 결국 부부가 같은 ‘몸뻬’바지에 장화를 신고 햇빛가림용 모자를 생활필수품으로 챙기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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