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폐업지원금, 원칙 따로 현실 따로

불합리한 원칙·허점 수두룩
“소규모·조건불리·고령농 우선? 물정 모르는 소리”

  • 입력 2016.04.17 08:57
  • 수정 2016.05.30 11:3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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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폐업지원금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농사를 못 짓겠다는 판단에 따라 폐업 신청을 해도 불합리한 원칙으로 폐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가구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폐업지원으로 남편은 폐업지원금을 받고 부인은 농사를 계속 짓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전남 장성군 조병욱씨(62, 동화면)는 포도농사만 40년째로 이골이 났다. 하지만 FTA 영향은 포도농사 전문가가 넘기에도 힘겨웠다. 게다가 평생 같이 농사를 지어온 아내가 몸이 성치 않아지면서 노지포도 농사 폐업을 마음먹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5년 FTA 폐업지원 대상 품목으로 체리, 노지포도, 시설포도, 닭고기, 밤 등 총 5개로 확정한 바 있다. 조씨는 지난해 가을 면사무소 산업계 담당자를 찾아가 노지포도 폐업신청을 했지만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설포도 하우스 1,200평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노지포도와 시설포도 모두 폐업신청을 해야만 대상자가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조병욱씨는 “부부가 각각 농지 등기를 한 경우엔 남편은 폐업지원금을 받고 부인은 포도농사 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포도농사를 일부러 포기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농사전망은 없고 형편마저 안 돼 고민 끝에 폐업신청을 했는데…. 최대한 농민들의 현실을 반영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장성군의 또 다른 포도농민 A씨의 경우는 더욱 기막힌 사례다. 지난해 가을 A씨는 면사무소에서 노지포도 폐업 신청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1,000평 포도나무를 모두 뽑아냈다. 하지만 올해 2월, 다른 면에 있는 시설포도 하우스까지 모두 폐업하지 않으면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면사무소에서 연락을 받게 된 것. 지난해 이상기후 피해로 노지포도 나무는 생산성이 떨어졌지만 800평 포도 하우스는 3년 전에 새로 투자를 했기 때문에 폐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A씨는 “지난해 바람피해가 극심해 포도나무를 못 쓰게 되서 폐원 신청을 했는데 이런 일을 겪었다. 주변에선 행정에 피해보상 신청도 하라지만 그만 뒀다”고 씁쓸해 했다. 철거한 노지포도밭에는 비가림 시설까지 더해 포도나무를 심었다. 평생 배운 거라고는 포도농사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주위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인근 B씨 부부의 경우 농지가 부부 각각의 명의로 돼 있다 보니, 지원까지 받아 설치했던 남편의 시설포도는 폐업신청을 하고 부인의 노지포도 농사는 계속 하고 있다는 귀띔이다.

김광채 광주원협 전 이사는 “포도 폐업지원금이 현실에 맞지 않고 형평성도 어긋난다”고 쓴소리를 하며 “폐업지원은 고령농이라거나 규모가 협소하거나 포도농사를 짓기 어려운 조건을 우선해서 지원해야 하는데, 현실을 십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노지포도의 경우 평당 2만원, 시설포도의 경우 평당 5만원 폐업지원금을 받으면 5년 동안 같은 품목의 농사를 못 짓게 한다는 것이 규정이다. 그런데 정작 폐원을 하고 싶어도 대상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시설자금까지 지원받은 하우스에 평당 5만원, 1,000평 하우스면 5,000만원 폐업지원금을 받고 편법으로 포도농사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제도를 만들었으면 행정에서 제도의 목적에 맞는 사업을 시행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사업시행지침서에는 폐업지원에 대해 ‘경쟁력이 낮고 생산성이 낮은 농가를 우선’한다고 명시하고 △조건불리 지역 △소규모 △보유장비가 적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우선지원 한다고 돼 있다.

농민들은 원칙 따로 현실 따로인 ‘폐업지원금’이 바로 잡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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