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남의 논에 물대지 마라

  • 입력 2016.04.08 14:09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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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4.13총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총선의 특징은 갈수록 현 정부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어느 선거 때보다 결과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다는 것이다. 어떻든 총선이 끝나면 정치 환경과 대선구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면 민중들은 민생과 민주주의 진전에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고 있을까? 총선결과가 민주주의, 실업, 비정규직, 남북긴장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것이라 믿을까? 

많은 민중들은 선거 결과가 ‘나의 삶’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보다는 또다시 ‘정치인의 삶’만 바뀔 것이라 여기고 있다. 그건 여러 선거를 거치며 나타난 경험이고 학습이다. 이런 증상은 농민들에게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건 나락값, 배추값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며 농업이 회생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선거열기와 사회변화 기대심리가 비례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이번 총선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건 이미 선거판이 여야를 막론하고 보수정치로 후퇴하는 상황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이다. 

최근 여야의 차이란 옷 색깔만 다를 뿐 내용면에서 비슷하다. 실상 빨강 옷에서 파란 옷으로, 파란 옷에서 빨강 옷으로 바꿔 입은 정치인들도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옷만 바뀐 것에 불과하다. 

농업에 관한 철학과 정책도 여야의 차이란 거의 없다. 현 정부의 농업정책은 개방농정과 시장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야당을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책도 이 테두리 내에 존재하고 있다.

FTA에 대한 평가도 없고, FTA에 동조한 반성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한-중 FTA 처리 대가로 떨어진 ‘상생기금’이라는 떡고물에 집착하고 있다. 농업예산의 50%를 직접지불하는 것이 농업체제의 기본틀을 바꿀 것이라는 근시안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새누리당과 현 정부가 쳐 놓은 그물 안에 있으니 야당의 정책은 현 정부의 정책을 수정보완하는 수준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농업정책이 비슷하고 야당마저도 근본적 개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농민들 입장에서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19대 국회 농업의제에서 가장 큰 성과이자 아쉬움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이다. 그간 한국농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책으로 통합진보당이 처음 발의하고, 이후 마지못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도 같은 법안을 제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임위 안건에도 상정되지 못하고 이번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쫓겨나면서 이 정책의 추동엔진이 꺼져 버린 것이다. 20대 국회가 열리면 이 정책이 살아날 가능성도 결국 덩치 큰 야당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대표하는 정당의 원내진입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 이는 이번 총선에서 농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의 지점이기도 하다. 

최근 회자되는 말 중에 ‘남의 논에 물대지 마라’가 있는데 이 말이 꾸준히 활용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런 우가 자꾸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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